바다 시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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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시를 만나다
  • 한국수산경제신문
  • 승인 2019.08.28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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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


홍일표


등대는 배가 고픕니다 등대를 어패류로 분류하나요?


땅 끝에 서서 바다를 읽습니다 등대는 걸어온 길만큼
매일 자라고 온몸이 빳빳하게 발기된 불기둥입니다

 

바다는 출렁이며 다가오다 살짝 등을 돌리고 멀어집니다
붉게 달아오른 몸이 빗물에 젖고 불이 꺼짖 등대를
해풍이 대신 울다 갑니다 아무래도 등대는 고등동물입니다

 

저렇게 여러 날 굶은 짐승도 있습니까?

 

등대는 조금씩 기울어지며 바다 속으로 걸어 들어갑니다
길게 자라는 손톱을 물의 요정들이 다듬고,
파도를 이어 만든 옷자락을 숭어 떼가 들고 따라옵니다

 

물속에 가라앉은 등대는 이목구비 뚜렷한 태아입니다

 

등대는 아침마다 태어나 물 밖으로 나옵니다
갓 건져올린 커다란 물고기입니다
온종일 서서 바다를 숨 쉬고 파도로 격동합니다

 

등대는 오늘도 목마른 불길입니다

 

※ 홍일표 작가는…
충남 천안 출생. 199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등단. 시집 <매혹의 지도>, <밀서 등>. 평설집 <홀림의 풍경들>, 지리산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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