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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날짜 [ 2019년06월26일 08시21분 ]


해녀들이 사용하는 도구
‘골갱이’ 혹은 ‘골각지’는 밭에서 김매는 도구인 골갱이(호미)와 비슷한 것인데, 해녀들이 사용하는 골갱이는 쇠붙이의 길이가 훨씬 길다. 소라(제주도말로는 ‘구쟁기’ 혹은 ‘구젱이’)를 딸 때 맨손으로 따내기도 하고, 바위틈에 있는 것은 골갱이로 꺼낸다. 성게는 바위틈에 깃들어 살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성게를 캐낼 때에도 골갱이를 쓴다. 골갱이는 성게를 캐낼 때 주로 쓰기 때문에 ‘성게골각지’라고도 부른다.
골갱이는 바위틈의 수산물을 후벼낼 때나 물속에서 돌멩이를 뒤집을 때, 물밑을 헤집고 다닐 때, 바위에 걸고 몸을 앞으로 당길 때 등 사용하는 데가 제일 많은 물질 도구이다.


4. 사회문화적 측면
제주 해녀들은 특이한 체질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는다. 오랜 기간 반복적은 물질을 통해 해녀가 되는 것이다. 제주도에 해녀가 가장 많았던 1960년대, 해안마을의 소녀들이 수심이 낮은 ‘애기바당(아기 바다)’에서 물질을 배우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물질 전후에 옷을 갈아입고, 물질 도중에 불을 쬐던 ‘불턱’의 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으로 해녀가 됐다. 이 시절에는 대게 열일곱 살 전후에 해녀가 됐다.
제주 사람들 중 어머니나 할머니가 해녀가 아니었던 사람이 없을 정도로, 제주 해녀는 제주 사람의 정체성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거친 파도에 테왁 하나를 의지해 두려움 없이 뛰어들고 있는 제주 해녀의 모습은 제주 사람들의 도전정신을 사랑한다.
제주도의 척박한 화산토양 탓에 제주 해녀는 가정 경제를 책임지기도 했다. 또 제주 해녀들은 일정 구역의 바다에서 공동물질을 해 거기서 나온 수입을 마을에 기증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학교바당(학교 바다)’에서 나온 수입으로 학교를 건립한 마을도 있다. 이는 더불어 사는 삶의 실천을 보여준다.
1970년대 이후부터 해녀가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생애과정이 아니라 선택의 문제가 됐다. 마을어촌계가 해녀들이 일하는 마을어장의 입어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해녀가 되려는 사람은 먼저 어촌계에 가입을 해야 한다. 대게 결혼을 한 후 해녀가 됐는데, 해녀가 되면 어촌계 산하 해녀들의 자발적 조직인 잠수회에 가입된다.


해녀들의 공동체 ‘잠수회’
마을 단위로 구성돼 있는 잠수회(일부지역에서는 ‘해녀회’ 또는 ‘부인회’라고 한다)는 물질을 하는 제주 해녀들의 조직으로 생산 공동체이며 회의 기구이다. 관행으로 제주 해녀는 자신의 마을 바다에 한해 입어할 수 있다는 조항이 1975년 수산업법 개정으로 성문화됨으로써 지금과 같은 어촌계원 위주의 제주 해녀 집단으로 재편됐다.
성문화가 되기 전에 남제주군 성산읍 온평리와 성산리의 잠수회가 불문율로 지키고 있던 잠수회칙이 있었다. 우도처럼 마을에 따라서는 불문율로 지켜지던 잠수회칙이 마을의 시행규정에 명시돼 있다. 우도는 섬 전체가 행정구역상 구좌읍 연평리였다.
그러다가 1986년 우도면으로 승격돼 4개리로 나누어져 있다. 그러나 12개 자연마을별로 공동어장이 정해져 있고, 동마다 향약과 시행규정을 따로 갖고 있어, 행정리보다는 자연마을이 하나의 마을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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