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아코디언
김명인
노래라면 내가 부를 차례라도
너조차 순서를 기다리지 않는다.
다리 절며 혼자 부안 격포로 돌 때
갈매기 울음으로 친다면 수수억 톤
파도 소릴 긁어대던 아코디언
갯벌 위에 떨어져 있다.
파도는 몇 겁쯤 건반에 얹히더라도
지치거나 병들거나 늙는 법이 없어서
소리로 파이는 시간의 헛된 주름만 수시로
저의 생멸을 거듭할 뿐
잡혔다 펼쳐지는 한순간이라면 이미
한 생애의 내력일 것이니
추억과 고집 중 어느 것으로
저 영원을 다 켜댈 수 있겠느냐
채석에 스몄다 빠져나가는 썰물이
오늘도 석양에 반짝거린다.
고요해지거라 고요해지거라
쓰려고 작정하면 어느새 바닥 드러내는
삶과 같아서 뻘 밭 위
무수한 겹주름들.
저물더라도 나머지의 음자리까지
천천히, 천천히 파도 소리가 씻어내리니,
지워진 자취가 비로소 아득해지는
어스름 속으로
누군가 끝없이 아코디언을 펼치고 있다.
※ 김명인 작가는…
경북 울진 출생. 19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집 <물 건너는 사람>, <바다의 아코디언> 등. 고려대학교 미디어문예창작학과 교수 역임. 목월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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