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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날짜 [ 2019년05월14일 15시28분 ]

 

<사진> 9면-어업


2절 유산적 가치
1. 식량 확보 및 안정성 측면

제주 해녀는 산소공급 장치 없이 보통 10m 정도 깊이의 바다 속으로 약 1분간 잠수해 수산물을 채취한다. 현재 제주 해녀는 하루에 여름철에는 6~7시간, 겨울철에는 4~5시간, 연간 90일 정도 물질 작업을 한다.
제주 해녀는 1970년대 중반부터 고무옷(잠수복)을 입기 시작했다. 1930년대 중반에는 무명이나 광목으로 만든 재래 해녀복인 ‘물옷’을 입었기 때문에, 겨울과 여름에 따라 월별 잠수 일수와 1일 잠수 횟수가 다르다. 전복과 소라는 음력 11월과 음력 12월, 그리고 음력 6월에 채취했다. 당시 가장 소득을 많이 올린 미역은 음력 1월부터 음력 3월까지 채취했다.
전복은 10월부터 12월까지 산란기이기 때문에 이 기간 동안 전복을 잡을 수 없다. 소라의 금채기는 6월부터 9월까지다. 여름 동안 금채했던 소라를 10월부터 3월(우도) 혹은 5월(김녕리)까지 잡기 때문에 현재 제주 해녀가 가장 많이 채취하는 수산물을 소라다.
제주도 어업 종사자 중 해녀가 차지하는 비중은 60%다. 해녀 인구는 1965년 2만3000명에서 1975년 8400명으로 10년간 3분의 1로 급격하게 감소했다.
한국사회에서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여자아이들이 ‘애기 바당(아기 바다)’에서 물질을 배우는 대신, 상급학교에 진학하든가 육지로 나가 공장에서 일했기 때문이다. 여자아이들은 섬에 남아도 더는 물질을 하지 않았다. 제주도가 관광산업을 주력 산업으로 하는 개발정책으로 여성 인력이 관광산업 부문으로 흡수되기 시작했다. 새롭게 물질을 배우는 여자아이들이 점차 사라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제주 해녀의 수가 급격하게 감소했음에도 불구하고 제주도내 어업종사자 중 해녀가 차지하는 비율은 여전히 높다. 제주 해녀의 수가 가장 많았던 1965년에는 도내 어업종사자 중 77%가 해녀였다. 제주 해녀의 수가 급격하게 감소했던 1970년대에는 도내 어업종사자 중 해녀의 비율이 41%까지 떨어진 적도 있지만, 2000년 이후에도 해녀의 비율은 계속해서 70%를 유지하고 있다. 고용구조 면에서 보면, 1960년대 이후 현재까지 제주도내 어업 활동의 주가 해녀의 물질 작업인 셈이다.


2. 생물다양성(생태적) 측면
제주 해녀의 물질 작업은 자연친화적인 채집기술로 지속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물질은 체력과 정신력, 즉 신체의 자기통제 능력과 물건을 많이 채취하겠다는 욕심 사이를 잘 조정해야 하는 자기와의 싸움인 것이다. 물속에서 숨을 참을 수 있는 한계 때문에 많이 채취하겠다는 개인적인 욕심은 줄어든다.
제주도내 100개 마을어촌계는 제주 해녀들이 물질을 하는 마을어장을 자율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마을어촌계는 채취기, 잠수작업 시간, 잡을 수 있는 수산물의 크기를 규정하고, 물질 작업에 필요한 기술과 도구를 통제한다.
마을 어촌계 내에는 제주 해녀들의 자율적 조직인 잠수회가 있다. 어촌계가 결성되기 전에는 물질을 하는 마을사람이면 누구나 잠수회원이 됐지만, 어촌계가 결성된 이후에는 한 가구당 한 사람에게만 심사를 거쳐 회원 자격이 부여되고 있다. 잠수회 회의를 통해 제주 해녀들은 마을어장에서 물질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방안을 스스로 모색하며 실천하고 있다.
<자료 제공=수협중앙회 수산경제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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