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립니다
한국수산경제신문 홈페이지가 리...
한국수산경제신문은 매일 업데이...
한국수산경제신문의 새로운 기자...
한국수산경제에 오신 여러분들을...
OFF
뉴스홈 > 기획 > 연재물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쪽지신고하기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기사스크랩 이메일문의 프린트하기
등록날짜 [ 2019년01월30일 08시25분 ]

네 성은 여씨로다 (汝姓必呂·여성필려)

한 선비가 멀리 여행을 가다가 어느 산골을 지나가게 되었다. 때는 마침 장마철이라 비가 오락가락하더니, 이 산골을 지날 무렵에는 계속 비가 내렸다.

이에 선비는 마땅한 객점을 찾아다니다가, 산속 외딴 곳의 한 오두막에 작은 방 하나를 얻어 유숙하게 되었다.

그 집은 나무를 베어다가 숯을 구워 파는 탄막(炭幕)이었다.

거기에는 이른바 '막창(幕娼)'이라고 하는 창녀가 있어 일을 돕고 있었다.

옛날에는 산속 탄막이나 산골 주막에 이런 '막창'이라는 창녀가 있어, 숯을 굽고 옹기를 만드는 홀아비나 지나가는 길손에게 잠자리를 제공하면서, 그 집안의 부엌일을 도와 밥을 얻어먹으며 살아가고 있었다.

선비가 며칠 동안 비에 갇혀 지내는 사이, 이 막창 여인과 자주 눈이 마주쳐 야릇한 눈길을 보내곤 했다. 그러다 선비는 이 여인을 불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이삼일 지나서는 마침내 잠자리까지 함께 하게 되었다.

그러나 여인은 건장하고 힘센 남자들을 하도 많이 상대하여 그 음호(陰戶)가 마치 커다란 항아리 같았고, 몸집이 크지 않은 선비는 양근마저 작아, 그 작업을 하는 동안 도무지 마찰의 감각을 느낄 수 없었다.

이에 선비는 옛날에 배운 중국 송나라 시대의 문호인 소동파(蘇東坡)'적벽부(赤壁賦)'에 나오는 묘창해지일속(渺滄海之一粟)'1)이라는 구절을 떠올리며 가만히 웃었다.

그리고는 곧 일을 끝내고 여인에게 말했다.

"네 음호는 그야말로 넓게 트인 남발낭(南拔廊)2)이로구나."

이 말을 알아듣지 못한 여인이 아무 말이 없자, 선비는 잠시 물러나 앉았다가 또다시 이렇게 읊었다.

靑山萬里一孤舟 (청산만리일고주)푸른 산 일만 리에 외로운 돛단배로다.

이 때 비로소 여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소녀는 무식하여 글을 읽을 줄 모르옵니다. '남발낭'이란 서울 근처에 어떤 지역의 이름인지는 잘 모르겠사오나, 소녀는 그 크기와 넓이 또한 알 수가 없사옵니다. 하지만 '靑山萬里一孤舟(청산만리일고주)'라고 읊은 구절은 참으로 못난 사내가 지은 글귀로 생각되옵니다."

이에 선비는 다소 부끄러워 한동안 입을 다문 채 말을 잇지 못하다가, 얼마 후 입을 열어 다시 여인에게 물었다.

"너는 정말로 말을 잘하는 여인이로다. 그런데 네 성씨가 무엇인지 알고 싶구나."

선비는 여인의 음호가 넓은 것을 어떤 글자에 비유해 놀려 주려고 물은 것인데, 여인은 쓸데없이 성씨까지 묻는다고 생각하여 언짢아하면서 대답했다.

"옛날 속담에 이런 말이 있지요. '대나무를 보면서 그 대밭 주인의 이름을 묻는다'고요. 생원어른께서는 소녀를 그저 '막창'으로 알면 되었지, 무엇 하러 성씨까지 묻고 그러십니까?

생원어른은 아들이 태어나고 딸이 태어났을 때, 그 아이들의 외조부 성명까지 기록해서 꼭꼭 간수해 두시는지요?"

이같이 정곡을 찔러 대꾸하는 말에 선비는 매우 불쾌했지만, 그렇다고 화를 낼 수도 없어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리고 천천히 마음을 가라앉힌 뒤 다시 말했다.

"내 너를 겪어보니 위의 입은 작으면서 아래 입은 매우 크고 넓어, 필시 네 성씨가 '여씨(呂氏)'려니 하고 물어본 것이니라."

이러면서 선비는 여인을 쳐다보면서 웃었더라 한다.


1)묘창해지일속(渺滄海之一粟) : 아득한 푸른 물결 바다 위에 좁쌀 한 알을 떨어뜨린 것 같다는 뜻으로 매우 작은 것을 나타냄.

2)남발낭(南拔廊) : 남쪽으로 길게 뻗은 복도.

 

 

지은 시로 기생에게 수모를 당하다 (羞妓賦詩·수기부시)
영남 사람으로 여씨(呂氏) 성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 그는 독서에 열중한 결과 명경과(明徑科) 과거에 당당히 급제한 뒤, 관직을 얻어 호서 지방의 아사(亞使)로 부임해 갔다.
때는 마침 온갖 꽃들이 피고 잎이 돋아나는 봄철이었으니, 어느 날 하루 봄 경치를 구경하려고 부여 백마강으로 나갔다.
이곳에서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뱃놀이를 즐기고 있었는데, 여씨 또한 여러 기생들과 함께 뱃놀이를 시작했다.
그리하여 배가 강 중류에 이르니, 봄볕이 따뜻하고 화사한 바람이 품속을 파고들어 시원했으며, 강 언덕의 경치는 사람의 눈길을 잡아끄는 데가 있었다.
이에 그는 기생들을 돌아보면서 말했다.
"정말 아름다운 경치로다. 강산은 이리도 좋아 진정 동방 제일가는 승지(勝地)인데, 어쩌자고 저 언덕의 바위 이름은 꽃이 떨어진 바위라는 뜻의 낙화암(落花岩)이란 말인가?"
이 말에 기생들은 그저 농담인 줄로만 여기다가, 가만히 살피니 여씨가 정말 낙화암의 내력을 모르는 것 같기에 한 기생이 앞으로 나서서 설명했다.
"소녀가 일찍이 듣기로는, 옛날 백제 의자왕이 날마다 궁녀들을 데리고 방탕하게
놀다가 마침 당나라 대군들이 쳐들어와 포위하니, 궁녀들이 절개를 지키기 위해
모두 저 바위로 올라가 강물에 몸을 던져 죽었다고 하옵니다.
그래서 낙화암이란 이름이 생겼다고 하온데, 아사 어른께서는 그것을 모르셨는지요?“
그러자 여씨는 겸연쩍은 표정을 지으면서 변명했다.
"내 사서삼경(四書三經)을 꿰뚫어 외우고 사략(史略)과 통감(通鑑)을 모두 다 섭렵해 알고 있지만, 동사(東史)에 대해서는 자세히 보지 못했노라."
이 때 다른 한 기생이 나서며 말했다.
"일찍이 소녀 여기서 많은 별성(別星) 어른들을 모시고 뱃놀이를 하였사온데, 그 때마다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역사적 사실과 결부하여 회고의 시를 읊었사옵니다. 하오니 오늘 어른께서도 시가 없어서야 되겠사옵니까?"
이에 여씨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경서(經書)를 외우는 데만 열중하여 명경과에 급제를 하다 보니, 시 공부를 하지 못해 제대로 지을 줄 몰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기생들로부터 수모는 당하기 싫으니, 방금 전 기생에게서 들은 백제 의자왕 때의 일을 가지고 한번 지어 보기로 마음먹고, 반나절이나 고심한 끝에 겨우 이렇게 읊었다.
憶昔曾遊地 옛날을 더듬어 보니 여기 유람지에서(억석증유지)
淫佚國雖亡 음탕하고 즐겁게 노느라 나라 비록 망했지만(음일국수망)
江山如此好 강산이 이토록 아름다우니(강산여차호)
無罪義慈王 의자왕에게는 죄가 없도다.(무죄의자왕)
대체로 이 시는 옛날 백제 의자왕이 놀았던 이 지역을 돌이켜 생각해보니, 음일(淫佚)로 인해 결국 나라를 망하게 했으나, 강산 경치의 아름다움이 이렇게 좋으니 의자왕이 방탕하게 논 것은 죄가 없고, 굳이 허물을 한다면 이렇게 좋은 경치에 잘못이 있다는 뜻으로 지은 것이었다.
백마강에서 여씨가 이런 시를 지었다는 소문이 퍼지니, 듣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유치하다면서 웃지 않는 사람이 없었더라 한다.

올려 0 내려 0
한국수산경제신문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무통장입금 정보입력 입금자명 입금예정일자
입금할 금액은 입니다. (입금하실 입금자명 + 입금예정일자를 입력하세요)
[관련뉴스]
- 관련뉴스가 없습니다.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기사글확대 기사글축소 기사스크랩 이메일문의 프린트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