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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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소총
  • 한국수산경제신문
  • 승인 2019.01.23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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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형이 오래도록 곡을 하다 (愚兄久哭 우형구곡)
한 고을에 형제가 살았는데, 형은 너무 어리석고 사리분별이 어두웠으며 아우는 영리하고 명석했다. 마침 지난해에 부친이 사망하여 장례를 치르고 늘 부친 묘소에 가서 절을 하며 애통해 하는데, 계절은 어언간 초여름으로 접어들었다.
이렇게 형제가 묘소에 가서 성묘를 하는 동안에 아우는 산소 앞에서 절을 올리고 슬프게 곡을 했지만, 형은 산소 주위를 돌아다니며 나무를 꺾거나 날짐승을 쫓으며 장난만 칠 뿐, 부친의 산소에는 절도 하지 않고 슬프게 곡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우는 평소의 형에 대해 잘 아는지라, 이를 보고도 특별히 뭐라고 하거나 나무라지 않고 혼자만 애석해 하고 있었다.
이렇게 지내는 동안 새 잎이 돋고 꽃이 피어나니, 묘소 근처의 경치가 매우 아름다워졌다. 이에 성묘를 하러 온 형은 너무 좋아, 산을 오르내리면서 꽃도 꺾고 나비도 잡아가며 재미있게 놀았다.
어언 여름도 깊어 초록이 무성해진 어느 날이었다. 어쩐 일인지 형이 선친의 묘소 앞에 와서 절을 하고 슬피 곡을 하는데,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그치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아우는 제사를 지내고 묘소에 차려 놓았던 제물(祭物)도 모두 거두었는데, 그때까지도 형은 계속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다.
아우는 한참 동안 그것을 바라보다가 이런 생각을 했다.
'형님이 그 동안 부친이 돌아가셨는데도 잘 모르고 슬퍼하지 않더니, 이제 그런 행동을 뉘우치고 진정으로 돌아가신 부친을 추모하는 마음이 생겼나 보다.
역시 세월이란 사람에게 지각이 들게 하는 모양이구나. 정말 다행스런 일이다.'
이렇게 혼자 생각한 아우는 돌아갈 준비를 모두 마치자, 곡을 하고 있는 형을 붙잡아 흔들며 말했다.
"형님, 그 동안에 못 다한 애도를 오늘 다하려고 하시는 것 같은데, 오늘은 이만 하고 돌아가야겠습니다.
해도 이미 서산으로 기울고, 가야 할 길 또한 머니 이제 그만 돌아갑시다."
아우가 이와 같이 말리니, 형은 눈물을 닦으면서 말했다.
"저 느티나무 잎이 저렇게 많이 나오도록 금년에는 아직 떡 한번 못 먹었으니, 내 어찌 슬프고 눈물이 나지 않겠느냐?"
형의 이 말에 아우는 실소(失笑)를 금치 못했더라 한다.


좋은 첩의 의미 (買做新胎 매주신태)
설화집 ‘어수신화’의 편찬자 장한종이 그의 나이 38세 때인 병인년(丙寅年 : 1806년)에 벼슬을 하여 경상도 통영으로 내려갔을 때의 일이다.
당시 그는 어느 양반집 여종이던 순월(順月)이란 여인을 첩으로 삼아 함께 살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가 임신한 지 네댓 달 되었을 무렵, 그는 학질에 걸려 고생을 하다가 병이 낫지 않자 서울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그 뒤로 장한종은 한번도 통영에 내려가 보지 못했는데, 소문으로 들으니 순월은 그가 떠난 직후 임신했던 아이를 낙태시켰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대여섯 달이 지난 뒤 통영에서 올라온 사람에게 듣자니, 순월은 다시 다른 남자를 사귀어 그의 아이를 수태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한편 장한종이 통영에 내려갈 때 함께 갔던 진용여(秦用汝)라는 친구는, 당시 통영에서 말순(末順)이라는 기생을 첩으로 들여 놓고 살았었다.
나중에 그도 서울로 올라오면서 말순을 데려올 처지가 못 되어 그대로 떼어 놓고 떠나왔다. 그런데 말순은 모시고 살던 진용여가 상경하자 절개를 지키느라 손님을 접대하라는 관장의 명령을 거역했다.
이 일로 인해 말순은 큰 벌을 받아 몇 차례 형장(刑杖)을 맞고 고통을 당하면서도 지조를 굳게 지켰다.
어느 날 밤 그녀는 마침내 통영 관아를 탈출해 서울로 올라와서는 천신만고 끝에 진용여를 찾게 되었다. 그는 사정이 어려웠지만 말순을 거두지 않을 수 없어 첩으로 데리고 살았다.
그러고 나서 어느 날, 장한종은 여러 친구들이 모인 곳에서 이 두 여인의 내력을 자세히 얘기하고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말순은 태장을 맞으면서도 끝까지 절개를 지키다 옛날에 섬기던 사람을 찾아 서울로 왔으니, 그 정절은 참으로 칭찬할 만한 일이로세. 그러나 말순은 좀 더 세월이 지나면 진용여에게 분명 큰 짐이 될 것이네. 반면 내 첩으로 살았던 순월은 내게 걱정도 끼치지 않고 짐도 되지 않았으니, 순월이 말순보다 더 낫다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에 사람들이 의아하게 생각하자, 장한종은 이렇게 설명하는 것이었다.
"어떤 사람이 남의 집 그릇을 빌려 쓴다고 가정해 보게. 이 때 만일 빌린 그릇이
파손되었을 경우에, 새 그릇을 사서 돌려주면 아무런 짐이 되지 않을 걸세.
이처럼 순월은 내 아이를 수태했다가 그것을 지워 없애고, 또 다른 사람의 씨를 받아 임신한 몸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으니, 내게 아무 짐도 되지 않게 해준 것이네. 정말로 순월은 청순하고 깨끗하지 아니한가?"
이 말에 거기 있던 사람들은 한바탕 크게 웃었더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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