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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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소총
  • 한국수산경제신문
  • 승인 2019.01.17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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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문짝도 넘어질 것이로다 (吾扉將顚)
한 고을에 어리석은 관장이 있었는데, 부인이 너무 억센 사람이라 늘 큰소리를 치지 못하고 살았다. 하루는 형리(刑吏)가 들어와서 한 여인에 대한 죄상을 아뢰는 것이었다.
"아뢰옵니다. 어느 마을에 사는 여인이 남편을 때려서 얼굴에 상처를 입혔다고 하여, 마을 사람들이 고소를 해왔사옵니다."
"뭐라고? 여인이 남편의 얼굴을 때려 상처를 입혔다니 희한한 일이로고!
속히 그 여인을 형틀에 올려 묶고 엄하게 매를 쳐서 문초(問招)토록 하라!"
이렇게 하여 여인을 형틀에 잡아매고 신문(訊問)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여인이 울면서 다음과 같이 호소하는 것이었다.
"사또나리 억울하옵니다. 쇤네 남편은 본처인 쇤네를 버려두고 돌보지 않은 채,
오로지 기생첩에게만 빠져 살면서 쇤네를 박대했사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왔기에 쇤네가 울분을 참지 못하고 꾸짖는 과정에서 자연히 목소리가 높아졌으며, 설왕설래(說往說來)하고 다투는 동안 저도 모르는 사이 남편의 얼굴에 상처를 입히게 된 것이지, 결코 상처를 내려고 해서 그리된 일이 아니옵나이다."
여인의 호소를 들은 관장은 엄숙한 어조로 꾸짖었다.
"여인은 들어라! 자고 이래로 음(陰)이 양(陽)에게 저항하지 못하는 것은 자연의 법칙이거늘, 너는 어찌 이 같은 법칙을 무시하는 행동을 했단 말이냐?
여봐라! 저 여인에게 강상(綱常)을 어긴 죄를 물어 곤장을 치도록 하라!"
관장의 판결에 따라 곤장 칠 준비를 하는데, 앞에 엎드려 있던 여인의 남편이 생각해 보니, 아무리 자신의 얼굴에 상처를 내긴 했지만 아내가 맞는 것을 차마 보고 있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울면서 관장에게 아뢰었다.
"사또나리! 소인 아뢰옵니다. 소인 얼굴에 상처가 난 것은 소인의 처가 때려서 그런 것이 아니옵고, 소인이 처를 잡고 밀치는 바람에 옆에 있던 문짝이 넘어지면서 소인의 머리를 덮쳐 입게 된 것이오니, 선처를 바라옵니다."
이렇게 여인의 남편이 변명하고 있을 때, 관장 부인이 그 과정을 창틈으로 지켜보다가 화를 내면서 큰소리로 중얼거렸다.
"세상에, 남편이 기생첩에게 혹하여 본처를 돌아보지 않고 고생을 시켰으니 그 아내가 남편을 때린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거늘, 소위 관장 자리에 있는 사람이 저런 판결을 내리다니 통탄스럽고 땅을 칠 일이로다."
하고 분을 참지 못해 문을 두드리면서 꾸짖는데, 그 소리가 어찌나 크고 과격하던지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모두 훤히 들리는 것이었다. 이에 관장은 놀라면서 형리를 불렀다.
"여봐라! 형리는 들어라. 매를 치라는 명령은 거두고, 형틀에 묶여 있는 여인을 풀어서 남편과 함께 집으로 돌려보낼지어다."
이렇게 다시 명령을 내린 관장은 주위 사람들을 돌아보며,
"만약 이 판결을 시행하여 여인에게 엄한 벌을 내릴 것 같으면, 필시 우리 집 문짝도 넘어질 것이로다."
라고 말하니, 듣는 사람들이 모두 입을 막고 웃었더라 한다.


차라리 나를 죽여라 잡놈아
강원도의 어느 지방을 지나다가 주막에 들른 김삿갓은 본의 아니게 옆자리에 앉은 남자들이 술에 취해 하는 말을 엿듣게 되었다.
"정말 고민이야. 이놈의 마누라들이 하루도 빼놓지 않고 으르렁대니 내가 중간에서 살 수가 있어야지."
지금까지 그들 패거리의 말을 들어본 결과, 그는 백만수라는 30대 남자였는데, 부인을 둘이나 데리고 사는 행복한 사내였다.
"이 사람아, 나는 아직 나이 서른이 넘도록 장가도 못갔는데 자네는 여자를 둘씩이나 데리고 살면서 매일 만나기만 하면 그리 호강에 겨운 소리만 지껄이는가?"
"그러게 말이야. 하나가 아니고 둘인데 뭐가 불만인가?
오늘은 큰마누라, 내일은 작은마누라, 이렇게 번갈아가며 품고 잘 수 있으니 얼마나 큰 복인가!"
백만수의 친구들은 불만스럽다는 듯 투덜거렸다.
"그런소리 말게. 오늘은 어떤 일이 있었는지 들어 보면 아마도 그런 말은 못할걸세.“
 "무슨 일이 있었다는 건가 우리가 해답을 줄 테니 한번 말해 보게."
김삿갓도 자뭇 그의 사연이 궁금해져 탁주 한 사발을 들이킨 다음 귀를 기울였다. 사연은 이러했다.
그는 한집에서 큰마누라와 작은마누라를 데리고 살고 있었는데 두 여자의 사이가 좋지 않아 하루도 다투지 않는 날이 없었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도 두 여자가 눈을 뜨자마자 마당에서 서로 으르렁대다가 서로 머리채를 잡고 대판 싸움을 벌였다는 것이었다.
백만수는 그 꼴을 가만히 보고 있을 수가 없어 싸움을 말리려고 끼어 들었으나 어느 편을 들어야 할지 난감했다.
그래도 누군가 하나는 나무래야겠기에 작은마누라의 머리채를 움켜잡고 방으로 들어가 호통을 쳤다.
"나이도 어린 것이 어디 윗사람한테 대드는거야! 너 오늘 나한테 죽어봐라!"
그러나 정작 작은 마누라를 방바닥에 쓰러뜨리고 본격적으로 혼을 내려고 하는데 탐스런 젖무덤이 옷 사이로 비어져 나와 그의 욕정을 자극하고 말았다.
그래서 결국 식전부터 그는 작은마누라를 껴안게 되었는데 한창 열이 오를 무렵 큰마누라가 방문을 벌컥 열고 들이닥친 것이었다.
큰마누라는 사내의 등덜미를 낚아채면서 소리쳤다.
"이런 잡것들을 봤나!"
백만수는 무안해서 아무 소리 못하고 머리만 긁적거렸다.
그러나 큰 마누라가 사내에게 죽일 듯이 달려 들어 씩씩거리며 다시 소리쳤다.
"이 잡놈아, 그런 식으로 죽이려거든 차라리 나를 죽여라, 나를 죽여!"
이 잡놈아!!.
김삿갓은 그말을 듣자 배꼽을 움켜잡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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