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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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소총
  • 한국수산경제신문
  • 승인 2019.01.03 0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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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를 다시 높이 들다 (擧扇更高)
한 고을에 관장이 부임해 왔는데, 매우 우둔하게 생긴데다가 행동 또한 거만해 보였다.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는 눈을 두리번거리면서 팔을 떡 벌리고 앉아, 헛기침을 자주 해대며 아랫수염을 천천히 쓰다듬곤 했다.
곧 여름이 되니 이번에는 커다란 부채를 쫙 펴들고는, 그 손을 높이 쳐들어 머리 뒤를 훨훨 부치는데, 아전들이 그 모습을 보고는 뒤로 손가락질을 하고 웃으며 매우 싫어했다.
하루는 많은 아전들이 모여 관장의 거동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을 때, 한 젊은 아전이 이렇게 제안하는 것이었다.
"제가 사또나리의 저 높이 부채질하는 손을 턱 밑으로 내려 부치게 한다면 무엇으로 사례하겠소?"
이에 여러 아전들이 일제히 손뼉을 치고 웃으며,
"네가 정말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우리가 좋은 술과 안주로 한상 푸짐하게 차려 대접하겠노라."
하면서 좋다고 권하는 것이었다.
곧 이 젊은 아전은 동료 몇 사람에게 삼문(三門) 밖에서 지켜보라고 해놓고, 자신은 기다시피 하며 뛰어 들어가서는 관장 앞에 조아리고 앉았다.
이 때 관장은 갓끈을 길게 앞으로 드리운 채 엄숙하게 앉아, 큰 부채를 쫙 펼쳐 들고 머리 뒤로부터 무릎에 이르기까지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설설 부치고 있다가 숨을 헐떡이면서 달려 들어오는 아전을 보고 물었다.
"으흠! 너는 무슨 일로 그리도 급하게 들어오는 게냐?"
이에 젊은 아전은 일부러 놀라는 척하면서 주위 사람들을 물리게 하고는 작은 목소리로 아뢰었다.
"소인이 방금 전 삼문 밖에서 보니, 부서진 갓을 쓰고 다 헤어진 도포를 입은 길손이 걸인인 양 행세하며 서성거려 괴이하게 생각했나이다. 그런데 또 마치 서울에서 온 사람마냥 차려입은 사람 몇이 역마를 타고 있는데, 주위에는 네댓 명의 호위병이 따르면서 오리정(五里程) 근처에서 서성이고 있었사옵니다. 소인의 짧은 소견으로는 아무래도 몰래 무언가를 살피러 온 사람 같았나이다."
이 말을 들은 관장은 갑자기 얼굴색이 노랗게 변했다. 그리고는 높이 치켜들었던 손을 내려 부채를 접고는, 겨우 서너 쪽만 펼친 채 턱 아래를 급히 부치면서 말했다.
"그것이 필시 암행어사로다. 이 놈아! 왜 진작 와서 고하지 않고 무얼 했느냐?
속히 나가 좀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해라."
관장은 이렇게 명령하고 급하게 일어서서 왔다갔다 하다가는 다시 앉았다가, 어느새 또 일어나 오락가락하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몇 쪽만 펼친 부채로 턱 밑의 가슴을 부치는데, 그 빠르기가 마치 번개 같았다.
삼문 밖에서 엿보고 있던 아전들이 관장의 이런 모습을 보고는 너무나 신통하여
감탄하면서, 급히 여러 아전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달려가 그 사실을 알렸다.
이 때 천천히 그 곳으로 온 젊은 아전은,
"잘 보셨는지요. 제 기술이 어떻습니까?"
하고 의기양양하게 물었다. 그러자 여러 아전들은 정말 장하다고 칭찬하면서, 다시 이런 제의를 하는 것이었다.
"네가 무슨 기술을 갖고 있기에 관장이 저리하도록 했단 말이냐? 정말 신기한 재주를 지녔구나. 그렇다면 네가 다시 관장의 저 부채를 예전처럼 높이 쳐들고 머리 뒤를 설설 부치게 할 수 있겠느냐?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두 배 의 사례를 하겠노라."
"아, 그거야 더 쉬운 일이지요. 지금 곧 그렇게 하겠으니 여러분은 다시 삼문 밖에서 잘 살피기 바라오."
말을 마치자 젊은 아전은 다시 걸어서 삼문 밖으로 나갔다가 재빨리 관장 앞으로 나아가 엎드렸다. 그러자 관장은 여전히 턱 아래를 급히 부채질하면서 물었다.
"살펴보았느냐? 무슨 소문을 들었으면 속히 아뢰어라."
"예, 사또나리! 앞서 보았던 너절한 행색의 남자는 진정 걸인으로 음식을 빌러 왔던 것이옵고, 무리를 이루고 있던 자들은 길손이었던지 모두 멀리 떠나갔사옵니다. 그리고 지금은 삼문 밖에 수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고 매우 평온하옵니다."
그 말에 관장은 만면에 희색이 가득하여 활짝 웃으면서, 다시 부채를 활짝 펼쳐 높이 쳐드는 것이었다.
"그러면 그렇지! 무슨 일이 있다고 어사가 내 고을에 들른단 말이냐? 아무 비행(非行)도 문제도 없는 고을인데!"
이러면서 관장은 예전처럼 위엄 있게 앉아 헛기침을 해대며, 부채를 더 높이 치켜들고 머리 뒤를 설렁설렁 부치는 것이었다. 이에 여러 아전들은 다시 한 번 감탄을 하면서, 약속했던 대로 젊은 아전에게 진수성찬을 차려 대접했더라 한다.


 


 닭도 성묘 가는구나...                     
어떤 양반이 이튿날 성묘를 떠나려고  여종에게 새벽에 밥을 일찍 짓도록 분부 했다. 그런데 여종이 동이트기 전에 밥을  지어 놓고 상전의 기침을 기다렸으나 거동 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동방이 훤히 밝았는데도 역시 소식이  없자 궁금해진 여종은 가만히 안채로 가 서 창밖에서 엿들으니 상전 내외는 방사에 열중하고 있었다. 여종은 마루에 무료히 앉아 공연히 선잠을 자면서 새벽밥을 지은 것을 후회하 고 있는데 햇대에서 내려온 한 쌍의 닭이 또 교환을 하는 것이었다. 여종은, "너희 같은 닭 년놈도 또한 성묘길을 떠날 거냐 ?"하고 종알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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