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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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소총
  • 한국수산경제신문
  • 승인 2018.06.14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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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사를 만나 원통함을 호소하다 (逢李上舍說寃債)
경상도 밀양(密陽) 고을에 새 관장이 부임하면서 가족을 모두 거느리고 갔다.
관장에게는 16세 된 딸이 있어 매우 예쁘고 고왔는데, 이 고을 통인1)이 보고 그 아름다움에 끌려 음흉한 음심을 품게 되었다.
1)통인(通引) - 조선 때 지방의 관장 밑에서 잔 신부름을 하던 사람.
곧 통인은 관장의 딸의 유모에게 접근하여 많은 뇌물을 주고 친분을 쌓았다.
이어서 계속 뇌물 공세를 펴면서 가까이 하니, 유모는 재물에 현혹되어 통인의 말이라면 무엇이든지 들어주는 관계로 발전했고 서로 숨김이 없을 만큼 가까워졌다.
어느 날, 마침 관장이 감영(監營)으로 감사를 만나러 가게 되어 며칠 동안 관아를 비우게 되었다. 이 틈을 이용해 통인은 유모에게 자기의 계책을 이야기했다.
"오늘밤은 마침 보름달이 밝아 대낮 같고, 영남루(領南樓)의 후원 연못에는 연꽃이 만발하여 경치가 좋으니, 밤이 깊은 후에 낭자를 데리고 연꽃 구경을 나오도록 하시오. 그리고 내가 시키는 대로 여차여차하게 해주면 내 후히 사례하겠소"
이 말을 들은 유모는 이미 뇌물을 많이 받은 터라, 감히 거절하지 못하고 그렇게 하겠노라고 약속했다.
그러고 밤이 깊자 유모는 곧 관장 딸을 이렇게 유혹했다.
"오늘밤 달빛이 너무 밝아요. 게다가 영남루의 후원 연못에는 연꽃이 만발하여 보기 좋으니, 나와 함께 연꽃 구경을 가면 어떻겠어요?"
"유모, 아무리 그렇다 해도 규중 처녀가 집밖의 후원 연못으로 꽃구경을 가는 것이 어찌 가능한 일입니까?"
관장 딸이 규중 처녀로서 집밖을 나갈 수 없다고 하니, 유모는 밤이 깊어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고, 또 자기와 함께 나가면 아무 일이 없다고 하면서 계속 강요하는 것이었다.
이에 관장의 딸은 나가고 싶지 않았지만 반강제로 유모를 따라 나섰다.
과연 달빛이 대낮 같이 밝은데, 영남루 후원 연못의 연꽃은 진한 향을 풍겨 사람의 정신을 흐리게 하였다.
관장 딸이 꽃구경을 하면서 천천히 걸어 대나무 숲 근처에 이르니, 갑자기 유모가 자취를 감춰 버렸다.
이때 대나무 숲속에서 한 남자가 뛰어 나와서는 관장 딸을 안고 대밭으로 들어갔다. 남자가 강제로 겁탈을 하려고 들자, 관장 딸은 소리를 지르면서 죽을 힘을 다해 저항했다. 그러니 비록 힘센 남자라고 하나 겁간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고,
남자는 마침내 칼을 꺼내 관장 딸의 가슴을 찔러 죽였다.
그리고는 몸뚱이에 돌을 매달아 함께 연못으로 던져버렸다.
이튿날 날이 밝으니 유모는 짐짓 놀라는 체하면서 소리쳤다.
"간밤에 낭자가 어디로 갔는지 사라지고 없습니다."
이에 관아가 발칵 뒤집혀 사방을 찾아보았지만, 관장 딸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 이 때 관장이 돌아와 크게 놀라며 백방으로 헤매고 다녔으나 역시 종적이 묘연했다.
이후 관장은 딸을 잃고 상심하던 끝에 관장직을 사임하고, 나머지 가족과 함께 슬픔을 안고 서울로 올라갔다.
그 뒤 밀양 고을에는 변고가 생겼다.
곧 관장이 부임해 와서 하룻밤 사이에 사망하는 일이 속출하는 것이었다.
이런 와중에 마침 한 관장이 새로 부임해 왔다.
그리고 이씨 성을 가진 진사 한 사람이 새 관장의 책방(冊房)으로 함께 따라오게 되었다.
2)책방(冊房 - 관장의 자문역)
이 진사는 고을 관아의 곳곳을 살펴본 다음, 영남루로 가서 사방을 둘러보고는 밤에 그곳에서 자겠다고 했다.
그러자 고을 아전들은 영남루가 특히 흉당(凶堂)으로 알려져 있으니, 거기에서 자는 것은 좋지 않다며 말리는 것이었다.
이에 진사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마루로 올라가, 촛불을 밝힌 채 혼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밤이 깊어 사방이 고요한데, 어디선가 음산한 바람이 일더니 여인의 슬픈 울음소리가 은은히 들려왔다.
'그러면 그렇지! 무슨 원귀(寃鬼)의 슬픈 사연이 숨어 있음이로다.'
한밤중에 여인의 울음소리를 들은 이 진사는, 비로소 관장들이 급사하는 이유를 짐작하고는 마음을 가다듬고 기다렸다.
조금 있자 가슴에 칼이 꽂힌 한 여인이 피를 흘리면서 커다란 돌멩이를 안고 올라왔다. 그래도 이 진사는 모르는 척 하다가 한참 뒤에 쳐다보며 물었다.
"너는 누군데 무슨 일이 있어 이렇게 울면서 왔느냐?"
이에 여인은 눈물을 흘리며 오열하다가 말을 꺼냈다.
"소녀는 지난날 아무 관장의 딸이었습니다. 16세에 부친을 따라 이곳 밀양 고을로 왔사온데, 유모의 음흉한 꾀에 빠져 여기 영남루 연못으로 꽃구경을 나왔다가, 저기 대밭에서 튀어나온 남자에게 잡혀 여차여차한 일을 당하고는 가슴에 칼이 꽂혀 죽었사옵니다.
그리하여 더러운 연못에 돌과 함께 던져져 지금껏 있사오니, 어찌 원통하지 않겠습니까?"
"알았노라, 그러면 혹시 너를 죽인 자의 이름을 아느냐?"
"이름은 모르옵고 지금 이방을 맡고 있는 자이옵니다. 원하옵건대 나리께서는 소녀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이렇게 말한 뒤 여인은 문득 간 곳이 없었다.
이 진사는 즉시 관장에게 달려가 자고 있는 것을 깨워 이 사실을 고하니, 관장은 곧 군졸을 시켜 이방을 잡아오라고 하여 엄하게 문초했다.
그러자 이방은 끝내 속이지 못하고 자신의 죄를 모두 자백하는 것이었다.
날이 새자마자 관장은 연못의 시체를 찾아보라고 하여 건져내 보니, 조금도 상하지 않고 자는 듯 고운 얼굴 그대로였다.
관장은 곧 그 시체를 향탕(香湯)2)으로 씻긴 뒤,
3)향탕(香湯) - 향을 끓인 물.
좋은 옷을 입히고 염습하여 관속에 넣어서 서울 본가로 올려 보냈다.
그런 다음 상부에 보고하여 이방을 사형에 처하고, 그 목을 효수(梟首)해 사람들의 경계가 되게 하였다 한다.
[참고] 밀양 `아랑전설


어젯밤에 마님께서 병을 고쳐주셨어요(昨夜夫人治病)
어느 촌의 의원 집에 새로 들어온 머슴이 있었는데 얼간이긴 했지만 일만은 몸을 아끼지 않고 잘 하였다.
그래서 의원은 누구를 만나거나 이 머슴의 칭찬을 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 머슴이
"나으리 어쩐지 요새 몸뚱이가 굼실굼실 이상스러운 것 같아유"하고 말한다.
헌데 보아하니 혈색이 별로 나쁜 것 같지 않았으므로,
"어디가 아프니? "하고 의원이 물었다.
"아픈 것도 아닌데유, 어쩐지 여기가......"
머슴은 거북살스럽게 사타구니의 그 불룩하게 솟아오른 장소를 가리켰다.
의원은 고개를 끄덕이고 빙그레 웃으며,
"아, 그 병이라면 걱정할 것 없지. 내일 하루 시간을 줄 테니 읍내에 갔다 오너라. 네 그 병을 고치려면 읍내 색시들한테 갔다오면 낫게 되니까"
"고맙습니다" 얼간이 머슴은 주인에게 감사하였다.
읍내 색시라는 뜻은 잘 알지 못했지만 주인이 무슨 소개장이라도 써주는 것 인줄 알고 크게 기뻐하여 이 일을 안방 마님께 자랑하자 안방마님 하시는 말씀이,
"그렇다면 내일까지 기다릴 것도 없네. 오늘 저녁 나리께서 먼 마을에 진맥차 출타하시니 저녁 먹고 몰래 내 방으로 살짝 들어오게나."
이튿날 의원이 사랑채에서 동네 사람들과 재미있게 웃으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데 머슴이 지나간다.
"저 애가 좀 전에 내가 이야기한 녀석이요. 얼간이지만 일은 퍽 잘 한답니다."
그리고 머슴에게 "그래 어떠냐? 읍내에 다녀왔느냐? 그리고 네 병은 어제보다 좀 나은 편이냐? "하자
머슴은, "네, 나으리 어제 밤 안방마님께서 읍내까지 갈 것도 없다시면서 다섯 번이나 고쳐주셨어유. 아주 개운해서 읍내 색시집엔 안 가두 되겠시유"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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