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상태바
고금소총
  • 한국수산경제신문
  • 승인 2018.03.21 10: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궁하면 통한다(窮則通)
황해도 어느 고을에 만수(萬壽)라는 총각이 가세가 빈한하고 조실부모하여 글도 배우지 못해 스무살이 넘도록 장가도 들지 못해 커다란 덩치에 머리를 칭칭 땋아 늘이고 다녀야만 했다.
그러나 다행히 영리한 편이고 또 부지런하여 동네 사람들에게 인심만은 잃지 않았다. 만수의 유일한 소원은 장가드는 일이었다.
하지만 만수의 형편이 이 모양인지라 누구하나 딸을 주려고 하지 않았다.
마침 같은 동네 부잣집 김좌수(金座首)에게는 과년한 딸이 있었다.
얌전한 데도 으뜸이요, 인물 또한 으뜸이어서 웬만한 혼처는 거들떠보지도 않다가 혼기를 놓쳤던 것이다.
김좌수의 딸을 마음에 두던 만수는 어느 날 좋은 묘책이 떠올랐다.
초여름이라 한참 농사짓기에 바쁜 때이지만 장가드는 일이 급한 만수는 김좌수댁을 찾아갔다.
다행히 몇몇 하인들은 모두 농사일로 들에 나간 모양이라 거침없이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처녀가 거처하는 방 앞에 가서 가만히 동정을 살폈다.
처녀는 홀로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만수는 서슴치 않고 처녀의 방문을 홱 열고는 다짜고짜로,
"궁(宮)?" 하고 외마디 소리를 지르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어나와 버렸다.
너무나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어서 처녀는 어리둥절하여 소리조차 지르지를 못했다.
더구나 '궁'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는 더욱 알 까닭이 없었다.
이런 일이 있은 후 만수는 위아래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소문을 퍼뜨렸다.
"나는 우리 동네 김좌수댁 따님과 '궁'했다."
이 소문은 순식간에 인근에 퍼졌다.
"여보게들, 만수가 김좌수 댁 따님과 궁했다니 그게 무슨 소린가?"
"그것도 모르겠나? 만수가 그 댁 따님과 정을 통했다는 말이지 뭔가."
"그게 사실일까?"
"만수가 무식하기는 해도 거짓말은 안한다네. 노총각이니 있을 법도 한 일이고."
"김좌수가 만수에게 딸을 줄까?"
"안 주면 별 수 있나? 이왕 이렇게 된 바에야 도리 없지."
드디어 소문을 듣고 노여움에 치를 떨면서 김좌수가 딸에게 물었다.
"그게 사실이냐?"
"소녀는 그런 짓을 저지른 일이 없사와요. 아버님"
눈물짓는 딸을 보고는 몹쓸 누명을 벗기고자 김좌수는 고을 관가에 송사(訟事)를 걸었다.
"듣거라, 본관이 묻는 말에 이실직고하지 않으면 관명(官命)을 쫓지 않은 죄로 호된 벌을 면치 못하리라. 알겠느냐?"
"예."
세 사람은 사또 앞에 깊이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면 만수에게 먼저 묻노니, 너는 아무 날 아무 시에 김좌수의 딸이 거처하는 방으로 가서 궁한 사실이 있느냐?"
"그러한 사실이 있사옵니다."
"궁이라 함은 김좌수의 딸과 관계를 맺었단 말이렸다?"
"사또께서 통촉하옵소서."
"다음, 김좌수의 딸에게 묻노니, 만수가 모일모시 너의 방으로 와서 궁한 사실이 있느냐?"
"네, 그런 사실은 있사옵니다."
딸의 대답은 다만 만수가 다짜고짜로 자기 방문을 열고 말로써 궁하고 달아나 버린 데 대한 사실만을 뜻하는 것이었으나 듣기에 따라 과년한 처자가 춘정을 못 이겨 총각 만수를 불러들여 관계를 맺은 것으로도 들리는 대답이었다.
이윽고 사또는 만수와 김좌수의 딸이 혼인을 하라는 판결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서로 팔고 마시다(相互賣買飮)
한양에 파락호(破落戶 ; 부랑자) 주오(朱伍)와 김삼(金三)이라는 자가 있었는 데, 먼저 주오가 말하였다.
"우리 나이가 40이 다 되어 가는 데도 아직 생업이 없으니 실로 세상사람들에게 부끄럽네. 술을 한 번 팔아봄이 어떠한가?
그리고 우리 둘 사이일지라도 맹세코 외상을 주지 말 것이며 외상 주는 것을 악귀 보듯 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
"좋네."
이내 주오와 김삼은 각자 술 한 동이씩을 마련해서 길가에 전을 벌이고 앉았다.
그러나 한참을 기다려도 술손님이 들지 않던 차에, 마침 김삼에게 엽전 세 닢이 있는지라 그것을 주오에게 건네주고 술 한 잔을 사 마시니, 이윽고 한참 있다 주오 또한 그 돈을 김삼에게 주고 술 한 잔을 사 마셔, 이를 반복하며 술을 팔고 마셨다.
저물녘이 되자 주오가 말하였다.
"비록 너와 나 사이일지라도 외상으로 술을 준 적이 없었는데, 술은 이미 바닥나고 돈은 겨우 엽전 세 닢일 뿐이니 어떤 놈이 우리 돈을 훔쳐갔는지 모르겠네."
둘은 이내 홧김에 술동이를 깨고 술에 잔뜩 취한 채로 집으로 돌아와버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