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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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소총
  • 한국수산경제신문
  • 승인 2017.09.20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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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께 아뢸 말을 외워보여 투기심을 그치게 하다 (講奏止妬)
한 판서가 있었는데 그는 이름난 재상의 사위였다.
사위인 판서는 매우 신중한지라 왕에게 아뢸 말이 있으면 반드시 하루 전에
향불을 피워놓고 의관을 바르게 한 후 꿇어앉아 미리 먼저 외어본 후에야 들어가 아뢰었고 그로 말미암아 주청(奏請)이 윤허되었다.
그런데 그 부인의 성품이 질투가 무척 심하여 늘상 괴로웠다.
하루는 판서가 연회에서 시중드는 기녀와 수작을 하다 집에 돌아오니, 그 소문을 들은 부인이 질투하여 강짜를 부리며 소란을 피우는지라 판서가 문득 마음속에 계책을 하나 세우고 나서 말했다.
"나는 내일 전하를 뵙고 아뢸 일이 있으니 방에서 나가 주시오"
그리고는 마침내 향을 피우고 관복을 갖춰 입은 후 하인들에게 명하였다.
"내가 내일 전하께 주청드릴 말을 미리 외우는데 몰래 엿듣는 자가 있다면 당장 쳐죽이리라"
부인은 어떤 주청인가 하고 문에다 귀를 대고 엿들으니 판서는 부인이 이러할 것을 미리 짐작하고서 왕에게 아뢸 말을 낭랑하게 외웠다.
"소신은 관직이 판서인데도 성품이 몹시 우매하고 열등하여 끝내 사나운 아내의 투기심을 막지 못하고 있사오니 이는 집안을 다스리지 못한 죄이옵니다.
집안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는데 어찌 감히 국정에 참여하겠나이까?
사직하여 낙향하고자 하오니 윤허하여 주시옵소서"
연습을 마치자 판서는 이내 취침하였다.
판서가 사직하고 낙향하면 하루아침에 부귀영화가 물거품이 되는지라 판서의 말을 엿들은 부인은 크게 겁이 나서 즉시 친정으로 달려가 재상인 아버지에게 알렸다.
"어제 밤 남편의 주청 연습이 이와 같았는데 만약 그 주청이 받아들여진다면 저는 녹봉(祿俸)도 없이 가난 속에서 어찌 살 수 있겠습니까?
아버님께서 급히 좀 멈추게 해주시어요"
재상이 딸을 크게 꾸짖었다.
"가장(家長)의 술자리 행동에 너그럽지 못하고 이처럼 큰 우환을 자초하였으니
누구를 허물하겠느냐?
게다가 주청드릴 말을 미리 연습까지 한 터이니 나는 네 말을 결코 듣지 않을 것이다. 네가 스스로 애걸해야만 용서받을 수 있을 것이다"
부인은 즉시 귀가하여 남편 앞에 나아가 절을 한 다음 엎드려 맹세하며 간청하였다.
"이제부터 만일 투기하는 행동이 있다면 비록 죽이고 내쫓는다 할지라도 저는 달게 받겠습니다.
애걸하옵건대, 전하게 주청을 드리는 일만은 보류해 주시고 지켜봐 주십시오."
판서는 거짓으로 마지못해 따르는 듯한 기색을 지어 보였다. 
이후로 부인은 판서가 기녀의 집에서 수일간씩을 지내고 돌아와도 다시는 투기하지 않았다 한다.


-모자를 쥐고서 꿈이라 여기다 (握帽疑夢)
어떤 어리석은 서생이 관서(關西)의 기녀에게 미혹되어 여러 달을 계속해 머물렀는데, 하루 저녁은 그 기녀의 행수기생이 다급하게 기녀를 부르며 말했다.
"관찰사께서 본군(本郡)에 이르시어 너를 수청기생으로 선택하셨다. 서둘러 단장하고 들어가 뵙거라"
한 방에 있던 서생이 흐느끼며 말했다.
"오늘밤에는 너를 품을 수 없으니 어찌하면 좋으냐?"
기녀가 말했다.
"저에게 좋은 계책이 있으니 걱정하지 마시어요. 월경중이라 핑계를 댈 것입니다.'
그러더니 음납(陰衲 - 생리대)을 차고 관찰사가 묵고 있는 객관으로 나갔다.
서생이 몹시 기뻐하며 몰래 기녀의 뒤를 따라가 엿보니, 기녀는 객관에 이르자
음납을 풀어 담장의 기와를 들춰낸 후 그 안에 감추고는 이어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크게 노한 서생은 음납을 꺼내들고 돌아와 손에 들고 앉아 등잔불을 밝히고 잠을 자지 않으며 말했다.
"내 저를 그처럼 극진히 아끼고 사랑했는데 어쩌면 나를 이토록 속일 수가 있는가?" 하고는 한참동안 혀를 차다가 문득 엎어져 음납을 손에 쥔 채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다.
새벽이 되어 기녀가 객사에서 나와 자신이 감추어 두었던 음납을 객관의 담장 기와 밑에서 찾았지만 간 곳이 없었다.
기녀는 서생이 가져갔으리라 짐작하고 집으로 돌아와 몰래 살펴보니 역시나 서생이 음납을 손에 쥔 채 깊은 잠이 들어 있었다.
기녀는 서생이 쓰고 있는 모자를 가만히 벗겨 서생의 손에 들려있는 음납과 바꿔치기를 하고는 나와 다시 어제 저녁처럼 사타구니에 음납을 찬 후, 급히 서생을 부르며 방으로 들어와 말했다.
"서방님, 주무셔요, 안 주무셔요?
저는 어제 저녁에 그 계책으로 수청을 모면했답니다"
서생이 깜짝 놀라 일어나 앉으며 소리를 질렀다.
"분하도다. 분해! 너의 정체가 이미 탄로났다. 내가 손에 들고 있는 물건을 보아라"
기녀가 물었다.
"무슨 물건을 보라는 말씀이신지요?'
"너의 음납이 여기 있지 아니한가? 변명하지 말라!"
기녀가 거짓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음납은 제 몸에 채워져 있는데 어찌 서방님의 손에 있다 하시는지요?
다시 보십시오. 모자를 가지고 음납이라 하시다니 무슨 헛소리이십니까?"
서생이 자세히 살펴보니 자신의 손에 들려있는 것은 과연 모자인지라 괴이하게 여기며 말했다.
"내가 꿈을 꾸었나?' 하고는 인하여 기녀의 등을 어루만지며 기뻐서 말하기를,
"너는 진실로 나를 저버리지 않았구나"
라고 말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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