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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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소총
  • 한국수산경제신문
  • 승인 2017.07.20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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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지어 첩을 얻다 (應口輒對)
서울에 한 소년이 있었는데 매우 영특하고 명석한 두뇌를 가지고 있었다.
하루는 한적한 길을 가고 있는데 앞에서 나이 십육칠 세가량 되어 보이는 어느 대갓집 여종이 광주리를 안고 걸어가는 것이 보였다.
이에 소년은 야릇한 정감이 일어나서 걸음을 재촉해 보니 푸른 치마에 빨강 저고리를 단정하게 입었는데, 수양버들 가지처럼 야들야들한 허리에 얼굴이 백옥같이 예뻤다.
곧 소년은 마음을 진정하기 어려워 그 뒤를 따라가다가, 때로는 걸음을 빨리해 여종의 앞으로 나아가기도 하고, 때로는 늦추어 뒤를 따르면서 관심을 드러냈다.
한참 동안 이렇게 걸어서 마침내 여종은 한 재상집 대문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소년이 급히 여종의 소매를 잡고 끌어당기니, 이를 뿌리치고 재빨리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에 소년도 안뜰에까지 따라 들어가니 여종은 크게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안채에 앉아 있던 재상이 내다보면서 호통을 쳤다.
"여봐라! 어떤 놈이 남의 집 내정(內庭)에까지 들어왔단 말이냐?
저 무엄한 놈을 당장 잡아 묶어서 이 앞에 대령하라."
이에 종들이 달려들어 소년을 잡아다가 뜰에 꿇어앉혔다.
"너는 어느 집 자제인데 이렇게 남의 집 안뜰까지 침범했느냐?' 하고
재상은 소년을 내려다보면서 엄하게 문초하는 것이었다.
이 때 소년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태연하게 대답했다.
"소인은 사대부집 자식이옵니다. 우연히 길에서 귀댁의 여종을 만나 그 청초함에 마음이 끌려 여기까지 따라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다른 뜻은 없사오니 너그럽게 용서해 주소서."
이에 재상은 한참 동안 소년을 주시하다가 얼굴에 웃음을 띠면서 입을 열었다.
"네가 사대부집 자식이라 했겠다. 그러면 글을 배웠느냐?"
"예, 소인은 어려서부터 글을 배웠으나 능하지는 못하옵니다"
"음, 그렇다면 좋다. 내가 불러주는 운자(韻字)에 따라 시를 지으면 너의 죄를 묻지 않고 보내 주겠노라. 시를 짓겠느냐?"
"예, 대감! 분부대로 하겠으니 운자를 부르소서."
이리하여 재상은 가장 시구로 나타내기 어려운, 이른바 선비들이 벽자(僻字) 흔히 쓰이지 않는 낯선 글자)라고 하여 기피하는 글자를 운자로 불렀다.
처음에 '죽을 훙(薨)' 자를 부르니 소년은 곧 응대하여,

"聞道東君九十薨(문도동군구십훙)"
“듣건대 옛날 신선 동군도 구십 세에 죽었으니”

하고 즉시 시를 지었다.
이어 '되 승(升)' 자를 두 번째 운자로 불러주니 소년은 곧,

惜春兒女淚盈升(석춘아녀루영승)
"가는 봄을 애석해 하는 여인들 눈물 흘러 한 되나 되는구나. "

하고 즉시 받았다.

마지막으로 재상은 가장 어려운 운자인'등나라 등(邆)' 자를 불러 주면서,
이번에는 막히겠지 하고 생각했다.
이에 소년은 조금도 서슴지 않고 응대해 나머지 두 구절을 읊었다.

“貪花狂蝶何須責(탐화광접하수책) ”
“相國風流小似邆(상국풍류소사등)"

“꽃을 탐내 미친 듯 따르는 나비를 어찌 그리도 꾸짖으십니까?
재상의 풍류 속은 그 옛날 등나라처럼 좁은 것 같습니다.”

이렇게 소년이 조금도 막힘없이 즉석에서 시를 지으니, 재상은 크게 감탄하고는
묶인 것을 풀라고 명했다. 그리고 마루 위로 올라오라 하여 소년의 손을 잡고
등을 어루만지면서 칭찬했다.
"기이하구나, 너의 그 재능이여!
뒷날 반드시 존귀한 인물이 될 것이로다. 기특할시고"
이와 같이 재상은 감탄하고 여종을 첩으로 보내 주었더라 한다.


-죽은 개처럼 늘어지다 (若死狗然)
양씨 성을 가진 하급 관리가 있었는데 내한매(耐寒梅)라는 기생에게 반하여
유혹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후에 대관(臺官사헌부 관리.)이 되자 관직의 위세를 빙자하여 또 다시 내한매를 유혹해 보고자 하였다.
하루는 일찍 퇴청을 하게 되자 내한매의 처소에 이르렀다.
그러나 관행에 따르면 사헌부 관리들은 기생집 출입을 할 수 없었다.
이에 양씨는 관복을 벗어 하인에게 주어 말과 함께 먼저 집으로 돌려보내고 혼자서 내한매와 더불어 비밀리에 주안상을 마주하여 앉았다.
그러나 미처 담소를 나누기도 전에 대문 밖에서 문득 방울소리가 나더니 조정의 높은 관원들이 갑자기 들이닥쳤다.
이에 양씨는 자신이 사헌부 소속 관리인 것이 탄로가 나면 낭패인지라 방의 뒷문을 열고 나가 마루 밑에 숨어들었고, 내한매는 관원들을 맞아들여 방안에 들게 하였다.
이 때 한 자리에 있는 어느 관원과 내한매는 이전부터 각별한 사이였으므로 내한매가 그를 위해 특별히 성대한 주안상을 차리니 여러 관원들은 차례로 술잔을 돌리며 우스갯소리를 나누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래서 양씨는 마루 밑에서 소리를 삼키고 숨을 죽인 채 옴짝달싹도 할 수 없었다.
때는 찌는 듯이 더운 삼복의 계절이었으므로 양씨의 정신은 몽롱하고 뼈는 풀어지는 듯하였는데 설상가상으로 모기가 무더기로 달려들어 사정없이 물어대므로
양씨는 그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죽은 개처럼 늘어져 버렸다.
여러 관원들은 밤이 이슥해지자 술자리를 파하여 하나 둘 흩어지고 양씨는 간신히 마루 밑에서 기어 나왔는데 땀이 흥건하게 옷을 적신 위에 먼지를 온통 뒤집어 써 사람꼴이 말이 아니었다.
이에 내한매는 그를 위로하고 도와주려 했지만 양씨는 크게 부끄러운 나머지 곧장 집으로 달아나 버렸다고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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