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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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소총
  • 한국수산경제신문
  • 승인 2017.06.14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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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통해 벽만 치다 (切齒打壁)
옛날 어느 해 모내기철인데도 날이 몹시 가물어 모내기를 할 수 없게 되니 왕이 기우제를 드리기로 결정했다.
이렇게 기우제가 선포되면 각 부서에서는 재숙처1)를 설치하고 낭관(郎官)2)들은 그곳에서 몸을 깨끗이 하여 정성을 드려야 했다.
일정 기간 동안 각 부서에서 그렇게 정성을 올린 다음, 모든 부서의 정성이 모아졌다는 결론에 이르면 기우제를 드리게 되어 있었다.
이에 왕이 모두 정성을 잘 드리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무감(武監)을 불러 각 부서를 순시하며 그 상황을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이 때 무감이 잘못하고 있는 낭관을 적발해 보고하면, 그는 엄벌에 처해지게 되어 있었다.
마침 무감이 선혜청(宣惠廳)3)의 재숙처에 갔을 때, 낭관이 웃옷과 버선을 벗고 친구들과 어울려 술과 고기로 즐기고 있었다.
이에 무감이 낭관에게 따졌다.
"재숙 규칙에 이렇게 하도록 되어 있습니까?"
"이봐요, 그렇다면 당신은 나를 적간(摘奸)4)하여 상부에 보고할 생각입니까?"
"그렇지요, 내 임무가 그러니 당연히 보고할 것입니다."
"그래요? 그렇다면 당신이 내 잘못을 보고했을 때 무슨 이익이 돌아옵니까?
내 마땅히 기우제가 끝나는 대로 쌀 30섬을 주겠소.
그러니 아무 일 없는 것으로 보고해 주시오."
이에 무감은 쌀 30섬이라는 말에 마음이 쏠렸다.
당시는 날이 가물어 쌀값이 치솟고 있을 때였다.
그래서 무감은 모두 재계를 잘하고 있다고 보고하여 기우제가 무사히 끝났다.
그러고 나서 어느 날, 무관이 성혜청 낭관의 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앞서 그가 쌀 30섬을 주겠다고 약속하여 그 쌀을 받기 위해 간 것인데, 낭관은 무감을 보자 전혀 모르는 사람을 대하듯 퉁명스럽게 묻는 것이었다.
"당신은 누군데, 우리 집에 무슨 볼일이 있어 왔습니까?"
"아, 일전에 만났던 적간 무감입니다."
"무감이라면 지금 우리 집에 무슨 일로 왔는지요?"
"전날 쌀 30섬을 주겠다고 약속하셨기에 온 것입니다."
"이보시오, 내가 무감에게 왜 쌀을 30섬이나 준단 말입니까?"
"아, 그러니까 선혜청 재숙 때 잘못을 보고하지 않고 덮어주면 쌀을 주신다 하지 않았습니까?"
"무슨 그런 말이 다 있습니까? 그때 내게 잘못이 있었으면 비행을 그대로 보고하면 되고, 없었으면 없다고 보고하면 되었을 일이지, 지금 우리 집에 와서 무슨 까닭으로 쌀을 찾는거요?
그것 참 별 사람 다 보겠네.“
이에 무감은 더 이상 아무 말도 못하고 돌아왔다.
그런데 그날 밤 숙직을 하면서 생각해 보니 도무지 울화가 치밀고 원통해 견딜 수가 없어, 주먹으로 계속 벽을 쳐댔다.
그러자 얇은 흙벽이라 크게 울리면서 소리가 났는데, 때마침 왕이 미복으로 거리를 돌아다니며 민정을 살피다가 그 근방을 지나가게 되었다.
이에 크게 놀란 왕이 그 까닭을 물으니, 무감은 끝내 숨길 수가 없어 사실을 고했다.
이튿날 왕은 선혜청 창고에서 쌀 30섬을 그 무감에게 내어주고, 낭관 앞으로 달아 놓아 갚도록 명령했다.
이어서 낭관은 재숙을 잘하지 않은 죄를 물어 파면시키고, 또 무감에게는 임금을 속인 죄를 물어 형조의 법에 따라 벌을 내리라고 명령했다 한다.
 
1) 재숙처(齋宿處) - 기거하며 몸을 단정히 하고 정성을 드리는 곳.
2)낭관(郎官) - 실무 책임자.
3)선혜청(宣惠廳) - 조선시대 대동미(大同米), 포(布), 전(錢)의 출납을 맡아보던 관아.
4)적간(摘奸) - 비리를 적발함.

 
-의원 무당 맹인 시험하기 (試醫巫盲)
옛날에 한 재상이 짖궂은 장난을 좋아했다.
하루는 심심하기에 의원과 무당과 맹인이 얼마나 영이(靈異)한지 시험해 보기로 했다.
그리하여 아침에 커다란 밤 한 톨을 입에 넣고 뺨이 불룩하게 부어 오른 척하며,
세 사람을 차례로 불렀다.
먼저 의원을 불러 그 볼을 보이면서 물었다.
"내 자고 나니 볼이 이렇게 부어올라 아파서 견딜 수가 없소이다.
무슨 약을 써야 하는지 처방해 주시오."
이러면서 아픈 시늉을 해보였다.
이에 의원이 부어 오른 곳을 유심히 살피더니, 만져 보려고 손을 가까이 대는 것이었다.
재상은 곧 몸을 뒤로 빼면서 지독하게 아프니 만지지 말라고 했다.
그러자 의원은 약방문(藥方文)을 내놓았는데, 약이 워낙 독해 부어 오른 곳에 붙여 두면 피부가 상하면서 속에 있는 나쁜 물질이 흘러나와 낫게 된다는 설명이었다.
재상은 그 약을 붙이겠다고 하면서 의원을 돌려보내고, 이어 무당을 불렀다.
그리고는 역시 아침에 일어나니 볼이 이렇게 부어올랐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는지 묻자, 무당은 자기의 신을 불러 물어 보고는 이렇게 말했다.
"서쪽에서 온 나무가 재앙을 일으켰으니, 굿을 해서 그 나무를 제거해야만 병이 낫게 됩니다."
이에 재상이 생각해 보자, 입안에 있는 밤톨은 한자로 '율(栗)' 이니
'서녘 서(西)' 밑에
'나무 목(木)' 을 붙인 글자이므로,
'서쪽에서 온 나무' 란 말이 일리가 있어 보였다.
끝으로 맹인을 불러 점(占)을 쳐보라고 하니, 맹인이 괘를 뽑아 보고서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율독(栗毒)이 입에 들어가서 생긴 병입니다. 1)율독(栗毒) - 밤의 독소. 당연히 경을 읽어야만 낫게 됩니다."
"허면 네가 경을 읽어 이것을 낫게 해줄 수 있느냐?"
"물론이지요, 어찌 소인이 대감을 기망하겠나이까?"
"좋다, 그렇다면 네가 경을 읽어 어디 한번 낫게 해 보아라."
재상의 요청에 맹인은 경을 읽기 시작했다.
한참 동안 북을 치면서 큰소리로 경을 읽던 맹인은 일어서더니, 대청마루 바닥을 두 발로 힘껏 굴리면서,
"급급 여율령(急急 如栗令), 입에 든 밤톨을 깨무시오!"
라고 소리쳤다.
이어서 재상의 얼굴을 잡고 턱을 힘껏 쳐올려 이로 깨물게 하니, 재상은 아파 견딜 수가 없어 밤톨을 내뱉아 버리고 말았다.
맹인을 돌려보낸 뒤 재상은 세 사람의 대답이 모두 엇비슷하여 어느 것이 더 낫다고 할 수 없다면서 크게 웃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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