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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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소총
  • 한국수산경제신문
  • 승인 2017.06.08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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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 고백 (自作之孼)
서울에 사는 한 선비가 젊었을 때 과거 공부를 하기 위해 북한산의 북한사(北漢寺)에서 독서를 하고 있었다.
이 절에는 스무 살 남짓한 젊은 스님 한 사람이 있어 유달리 한문에 능했고 영특하여 글공부하는 선비들과 다름이 없었다.
그래서 이 선비가 독서를 하면서 모든 일을 그 스님에게 부탁하여 처리하도록 당부하니, 두 사람 사이가 매우 친숙해졌다.
얼마 후 이 선비는 과거에 급제했고, 그 후에도 선비는 자주 그 스님을 불러 같이 어울리면서 이야기를 나누고는 했다.
게다가 선비는 심부름을 시킬 일이 있으면 으레 스님을 불렀는데, 그때마다 달려왔으며 조금도 어기는 일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선비가 북한산 근처를 지나게 되자 사람을 시켜 부르니, 스님은 거기 없고 다른 절로 옮겨갔다는 것이었다.
이에 옮겨간 절을 물어도 아는 사람이 없고, 이후로도 선비는 그 스님을 영영 만나지 못했다.
그리고 많은 세월이 흘렀다. 이 선비는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쳐 마침내 영남 감사의 자리에 올랐다. 하루는 이 감사가 여러 고을을 순시하기 위해 길을 나서서 얼마를 가다보니 길가에 한 스님이 앉아 있는데, 흡사 그 옛날 북한산에서 다정하게 지냈던 그 스님으로 생각되었다.
이 때 스님은 지나가는 감사의 행차에 관심이 없어, 누군지 보려고도 하지 않고
나무 그늘 아래에 앉아 쉬고 있었다. 곧 감사는 군졸을 시켜 그 스님을 불러오게 하여 확인하니, 과연 그 때 가까이 지내던 그 스님이었다.
"아니, 스님! 이게 얼마만이요? 그 동안 어느 절에 있었기에, 그렇게 한 번도 만날 수가 없었습니까?
내 아무리 찾아도 스님을 만날 수 없어 매우 서운했답니다."
이에 스님은 특별히 반가워하는 기색도 없이,
"소승은 본래 영남 사람으로 북한사에서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었습니다.
그 후로 혼자 종적을 감추니 고향 소식을 너무 몰라 이렇게 내려와서, 이 지역의 한 절에 거처하고 있습니다."
하고 담담하게 설명하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들은 감사는 여전히 반가워하면서, 자신을 따라오라고 하여 동행했다.
그리고 숙소마다 음식을 대접하면서 매우 우대해 주었다.
이렇게 함께 다니다가 여러 날만에 감사는 이 스님을 데리고 감영으로 돌아왔다.그리고 밤에 스님과 함께 자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스님은 이제 승려 생활을 청산하고 환속하기 바라오. 그래서 나와 같이 지내다가 내 임기를 마치고 돌아갈 때 함께 상경하면, 좋은 혼처를 구해 혼인도 시켜주고 살아갈 방도를 마련해 줄 테니 그렇게 하도록 하시오."
감사는 북한사에서 독서할 때 이 스님의 도움을 많이 받아, 그 은혜를 갚으려고 생각한 것이었다.
이에 스님은 결코 환속하지 않겠다고 고사했고, 감사는 재삼 권해 보았지만 스님은 끝내 사양하는 것이었다.이러면서 한편으로 스님의 눈치를 살피니, 무슨 곡절이 있는 듯했다. 곧 감사는 스님의 손을 잡고 그렇게 거절하는 연유를 물었다.
그러자 스님은 한참 동안 머뭇거리다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감사께서 그렇게 간절히 물으시니 소승이 무엇을 숨기겠습니까?
소승은 본래 이곳 어느 고을에 사는 청년이었습니다. 한번은 산길을 가다가 보니, 어떤 청상 과부가 남편의 무덤가에 움막을 짓고 여묘(廬墓)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그 여인의 얼굴이 어찌나 아름답던지 욕정이 솟아 그만 정신을 잃었답니다. 그래서 춘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달려가 강제로 겁탈하려고 하니, 여인은 너무나 강하게 저항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소승은 완전히 이성(理性)을 상실한 상태였기에, 여인을 끈으로 묶어 놓고 마침내 겁탈을 했습니다.
그런 다음 여인을 풀어 놓고 도망쳐서 어느 주막에 숨어 있었는데, 어떤 청상 과부가 악한의 겁탈로 자결했다는 소문이 들리고, 곧 이어 관아에서 사건이 상정되어 범인을 찾는다는 소문이 들렸습니다.
이에 소승은 겁이 나서 북한산으로 달아나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었고, 평생 금욕을 결심하여 환속이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에 감사는 크게 놀라, 이튿날 관아에서 보관하고 있는 미결옥사를 열람해 보니, 그 사건이 아직까지 미결로 남아 있었다.
그러자 감사는 형리를 불러 사건 당시에 작성되었던 문안을 가져오라 하여 살펴보니, 스님의 말과 부합되는 것이었다.
결국 감사는 심사숙고를 한 후에 이 스님을 구금하게 하고는 일렀다.
"너는 죽을 죄를 지었도다. 내 비록 너와의 정의는 두텁다고 하지만, 감사의 직무를 수행하는 몸으로 너의 죄를 결코 용서해 줄 수는 없느니라. 그러니 네 죄값을 달게 받을지어다."
이러고는 스님을 효수(梟首)하여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우고, 과부의 원혼을 달래 주었더라 한다.

 

-소에게 맹자 읽히기 (讀牛孟子)
옛날에 한 선비가 있었는데 집에서 부리는 종이 자주 꾀를 부리고 일을 열심히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하루는 선비가 종을 불러 왜 그렇게 게으름을 피우느냐고 하면서 꾸짖었다.
그러자 종이 물러가면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주인 양반은 방안에 편하게 앉아 글만 읽으니 뙤약볕에 나가 일하는 힘든 내 처지는 전혀 알지 못하고 지쳐서 조금만 쉬어도 게으름을 피운다고 야단을 치니
사정을 너무 모르시네."
이에 그 소리를 들은 선비는 다시 종을 불렀다.
"네 생각에 나는 편안히 놀고 너만 힘들게 일한다고 여기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너와 내가 하는 일을 바꾸어 보자구나.
내 오늘부터 너처럼 옷을 입고 들에 나가 일을 하겠다. 대신 너는 내가 입었던 옷을 입고 망건과 갓을 쓰고 행전에 버선까지 모두 갖추어 착용한 다음, 책상에 꿇어앉아 '맹자'를 배우기 바란다."
이렇게 약속하고 종이 선비의 복장을 한 채 책상 앞에 꿇어앉으니 얼마 안 있어
두통이 나고 다리가 아프며 구역질까지 나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종은 다시 선 비 앞에 나와 사죄했다.
"주인어른! 소인이 하던 일은 오히려 쉽고 방안에 앉아 독서하는 것은 훨씬 더 어렵습니다. 이후로는 어르신께서 시키는 일을 게으름 피우지 않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래, 알았느냐? 양반의 일이 보기에는 쉬운 것 같지만 실제로는 매우 어려운 것이란다."
"예, 어르신. 실제로 그렇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후로 종은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일을 잘했다.
그러던 어느 날, 소를 몰고 나가 밭을 가는데 소가 말을 잘 듣지 않았다.
그러자 종은 소의 코를 잡고 그 머리를 향해 이렇게 꾸짖었다.
"이 놈 소야! 내 말을 잘 안 들으면 망건과 갓을 씌워 책상 앞에 앉혀 놓고 '맹자'를 읽히겠노라."
이 말을 듣고 선비는 크게 웃었더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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