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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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소총
  • 한국수산경제신문
  • 승인 2017.05.24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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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를 안은 것 같다 (抱似狗雛)
한 양반 생원이 가문이 몰락하여 생활이 어려워지자. 집을 정리해 시골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명색이 양반이라 조상의 신주를 반드시 모시고 가야 하는데 따로 모시고 갈 가마가 준비되지 않아, 할 수 없이 보자기에 싸서 생원이 품에 안고 가기로 했다.
이렇게 하여 길을 떠나는데, 마침 옆집 노파가 애지중지 기르던 강아지를 찾으니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마루 밑으로 부엌으로 사방을 찾아보다가 대문 밖을 내다보니, 이웃에 살던 양반 생원댁에서 이사를 가는데, 그 집 주인 생원이 자기 집 강아지를 품에 안고 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자 노파는 급히 달려나와 소리쳤다.
"생원어른! 생원어른! 우리 집 강아지는 놓고 가십시오."
이에 생원이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묵묵히 걸어가니, 노파는 급히 따라와 옷자락을 잡아당기면서 말했다.
"생원어른! 왜 남의 집 강아지를 도적질해 가는 겁니까?"
"뭐라고요? 양반이 어찌 남의 강아지를 도적질해 간단 말이요? 어서 이 옷을 놓으시오."
"생원어른! 그 강아지는 이 늙은 것이 매우 소중하게 기르는 것입니다. 제발 앞에 안고 있는 강아지를 놓고 가십시오."
이 말에 생원은 집이 가난하여 신주를 품에 안고 가는 것도 가슴이 아픈데, 노파가 자꾸 따라오면서 소중한 신주를 자기 집 강아지라며 달라고 조르는 것에 더욱 슬프고 민망하여 견디기가 어려웠다.
그리하여 생원은 화를 내면서 보자기를 풀어 신주를 보여 주며 소리쳤다.
"이것 봐요! 이게 댁의 강아지입니까? 강아지가 이렇게 생겼습니까?"
"아이 참, 그 모습이 꼭 우리 강아지를 안은 것 같기에 물은 것이랍니다.
너무 화내지 마십시오."
양반 생원은 자신의 신세가 더욱 애처럽게 느껴져 서러운 눈물을 쏟았더라 한다.

 

 

-장승을 잡아 가두다 (捉囚長丞)
남쪽 지방에 사는 한 스님이 한지(韓紙)를 지고 시장으로 다니며 팔고 있었다.
하루는 한지 1백권을 지고 시장으로 오다가 그 입구 산모퉁이에 서 있는 장승 앞에 짐을 벗어 놓고, 목이 말라 근처 주점으로 들어가 술 한 잔을 마시고 나와 보니, 그 한지 100권이 송두리째 간 곳이 없었다.
스님은 당황하여 이리저리 다니며 물어 보았지만, 아무도 보았다는 사람이 없었다. 곧 스님은 분통을 터뜨리며 관가에 가서 이 사실을 고하고, 종이를 찾아 달라고 애원했다.
이에 관장은 한참 동안 생각하다가 사령을 불렀다.
"여봐라! 이 스님이 장승 앞에서 종이 짐을 벗어 놓고 잠시 자리를 뜬 사이 그 짐이 없어졌다는구나. 그런데 아무도 가져간 사람을 못 보았다고 하니, 이는 필시 장승이 종이를 훔쳤느니라. 속히 가서 그 장승을 잡아오도록 하라."
사령들이 분부를 받들고 달려가 서 있는 장승을 뽑아 오니, 사람들이 보고 웃으며 수군거렸다. 이에 관장은 다시 명령하여,
"그 장승을 옥에 가두고 모두들 단단히 지키도록 하라."
라고 호령한 뒤, 종이를 잃어버린 스님은 나가서 며칠 동안 기다리라고 했다.
그리고 2,3일이 지난 밤에 관장은 가까이 있는 통인을 불러 다음과 같이 분부했다.
"너는 오늘밤 아무도 모르게 옥으로 가서 갇혀 있는 장승을 은밀히 가지고 나가,
사람들이 보지 않는 곳에 단단히 숨겨 두고 오너라."
이렇게 당부를 하고, 날이 새자 관장은 동헌에 좌정한 뒤 모든 아전 관노들을 불러서 큰 소리로 명령했다.
"오늘 장승을 치죄하여 스님이 잃은 종이를 찾도록 할 것이니, 어서 장승이 도망가지 못하게 단단히 묶어 이 앞에 대령시켜라."
이에 사령이 급히 옥으로 달려가 문을 열어보니, 장승은 간 곳이 없었다.
사령들이 이상히 여기고 여기저기 찾아보다가, 결국은 찾지 못하고 달려와 장승이 사라지고 없다고 고했다.
곧 관장은 크게 화를 내며 공형(公兄)을 불러 분부했다.
"듣거라. 너희는 도둑질한 장승을 잘 지키지 못하고 도망가게 했으니, 그 명령을 어긴 죄 면치 못할 것이다. 또한 관장의 명령을 소홀히 한 죄로 관아의 모든 관속들은 함께 벌을 받아야 하니, 소속된 아전과 관노는 빠짐없이 각자 종이 3권씩을 오늘내로 바치되, 종이 한쪽 머리에 반드시 자신의 성명을 명기토록 하라."
그러자 고을 아전과 관노들 7,8십 명이 종이를 구하느라 대소동이 벌어졌다.
사람들은 지금까지 관장의 처사가 모두 사리에 합당했는데, 이번만은 많은 원망을 사는 처사라고 비난하면서 종이를 구하여 모두 바쳤다.
그리하여 쌓인 종이가 200여 권에 이르니, 관장은 그 스님을 불렀다.
"너는 네가 잃어버린 종이를 이 속에서 가려낼 수 있겠느냐?"
"예, 소승은 모든 종이에 표시를 해두었사옵니다."
"그렇다면 어서 찾아내 보아라."
곧 스님은 그것을 일일이 뒤져, 자신의 종이 몇 권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이에 관장은 그 종이 머리에 기록된 이름을 보고 그 종이를 바친 사람을 확인하여 추적하니, 종이를 훔쳐간 도둑을 찾게 되었다.
곧 도둑을 문초하자 순순히 자백하기에, 잃었던 종이 100권을 전부 회수하여 스님에게 주어 보냈다. 그리고 나머지 종이는 모두 납부한 사람들을 불러 도로 가져가라고 하니, 사람들은 모두 관장의 현명한 처사에 감탄을 금하지 못했더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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