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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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소총
  • 한국수산경제신문
  • 승인 2017.04.05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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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단을 우려해 가격을 다투다 (念弊爭價)
옛날에 이름이 널리 알려진 재상이 한 사람 있었다.
마침 지붕을 수리할 일이 있어 일꾼을 구해 일을 시켰는데, 기와장수가 소문을 듣고 좋은 기와를 싣고 와서 사라는 것이었다.
값을 묻자 1장에 4푼을 달라는데, 재상은 미리 값을 알아본 터라 3푼 가치밖에 안된다고 했다. 그리하여 1푼 차이로 서로 다투면서 오래 승강이를 벌이니, 집안 일을 감독하는 문객(文客)이 조용히 재상에게 아뢰는 것이었다.
"대감, 기와 값 1푼 차이로는 재물의 손해가 크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사소한 문제로 대감께서 친히 기와장수와 오래 다투시면, 체면에 손상이 될까 두렵습니다. 그만 달라는 대로 주고 사는 것이 어떠실는지요?"
이에 재상은 정색을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자네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구먼.
내가 어찌 1푼을 아껴 이러는 것이겠는가.
내가 만약 3푼 값인 이 기와를 4푼으로 사게 되면 저 장사꾼은 다른 데 가서
아무 재상이 4푼으로 샀으니 역시 4푼으로 사라고 할 테니까, 그 폐해가 막대해진단 말일세. 보통 가정에서는 별 것 아니지만, 이 일의 파급 효과는 실로 엄청나게 크다는 것을 알아야 한단 말이네."
이 말을 들은 문객은 크게 감탄했다.
이 일은 세상 사람들이 값도 묻지 않고 사치품을 사면서, 세간의 폐해에 대해 아랑곳하지 않는 풍조에 좋은 본보기가 될 만한 처신이었기 때문이었다 하더라.

 

 

- 문자 해석하는 첩 (才女釋義)
옛날에 한 재상이 첩을 들여놓으니 매우 총명했으며 문자도 읽을 줄 알았다.
또한 재상의 집에는 한 문객(文客)이 드나들었는데, 해학을 좋아해 재상이 매우 친근하게 대하고 우스갯소리로 얘기하며 서로 무관한 사이로 지냈다
어느 따뜻한 봄날이었다. 재상이 첩과 함께 후원 정자에서 봄 경치를 구경하고 있으니, 점심 무렵 그 문객이 아이를 시켜 다음과 같은 네 글자를 적어 재상에게 드리는 것이었다. 그러자 재상이 또 무슨 해학인가 하고 종이를 펼쳐보니,
'일심인복(日心人腹)' 이라 적혀 있었다.
이에 재상이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 뜻을 알 수가 없어 만지작거리고 있으니 첩이 물었다.
"대감께서는 무엇을 가지고 그렇게 깊이 생각하십니까?"
"아, 그 문객 말일세. 이렇게 네 자를 적어 보내왔는데, 도무지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가 없어 고심중이네."
하면서 재상은 그 종이를 첩에게 주며 생각해 보라고 했다.
그러자 첩이 그 글을 몇 번 자세히 읽어 보더니 웃으면서 아뢰었다.
"예, 이것은 별로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일(日)'자를 아래로 좀 길게 썼으니
곧 '긴긴 날'이라는 뜻이오며,
'심(心)'자를 좀 자세히 보소서. 두 점을 찍어야 하는데 한 점만 찍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점이 하나가 없는 '心'자, 곧 '무점심(無點心)'으로 점심밥이 없다는 뜻이옵니다.
그리고 '사람 인(人)'자는 다른 글자보다 작게 썼으니'소인(小人)'이란 뜻으로 썼으며,'배 복(腹)'자 역시 '口'자 안에 '한 일(一)'자를 넣지 않고 비웠으니 '뱃속이 비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전체적으로'긴긴 날 점심밥은 없고 소인의 뱃속은 비었습니다.
(長日無點心 小人腹中空)'
라는 말을 하고자 하였사오니, 오찬을 마련해 주어야 할 것으로 생각되옵니다."
이 말을 들은 재상은 첩을 향해 매우 기특하다고 칭찬하고, 곧 점심 식사를 마련해 문객에게 보내 주면서 첩이 해석한 이야기를 들려주니, 문객은 그녀의 재능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한다.

 

- 공연히 헛걸음만 하다 (公然虛行)
옛날에 한 사람이 있었는데 지극히 어리석고 게을렀다.
마침 숙부가 세상을 떠났는데, 연락을 받고도 문상 갈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내가 하도 답답해서 이렇게 책망했다.
"여보, 당신은 숙부님이 운명하셨는데도 문상 갈 생각을 안 하니 무슨 까닭입니까? 어서 가서 문상을 해야지요."
그러자 이 사람은,
"뭐 문상 같은 건 그렇게 급히 서둘 일은 아니잖아?"
하면서 역시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내가 여러 번 권하고 독촉하니 부득이 일어나 상가로 갔는데, 미처 문상도 하기 전에 상주인 종제에게 묻는 것이었다.
"종제! 숙부님이 생전에 쓰시던 갓은 어디 있는가? 평소 좋아 보여서 내가 가져다 쓰고 싶어 그런다네."
"아, 형님. 늦었습니다. 건넛마을 이서방이 탐을 내면서 달라기에 벌써 주어 버렸는데요."
"응, 그랬군. 그러면 숙부님이 쓰시던 여름 휘항1)은 어디 있는고?
내 가져다 쓰고 싶은데."
"형님, 그것도 목수에게 주었습니다. 통나무를 켜서 관을 짜느라 너무 수고가 많기에 주어서 보냈답니다."
"목수에게 주었다고? 그렇다면 숙부님의 낡은 진신2)은 어디 있지?
그게 아직 멀쩡하던데 내가 신으면 좋겠어."
"형님, 그 진신도 말입니다. 염습을 하느라 많이 애쓰신 동네 노인께서 가져가겠다고 하시기에 드렸습니다."
종제가 이미 남에게 모두 주어 버렸다는 말에, 이 사람은 하나도 가져갈 것이 없다고 투덜대고 일어서면서,
"그렇다면 오늘은 공연히 헛걸음만 했구나."
라고 말하고는 문상도 하지 않은 채 시무룩해 돌아가 버리는 것이었다.
이를 본 조문객들이 혀를 차지 않는 사람이 없었더라 한다.


*1)여름 휘항(凉揮項) : 목에 땀이나 옷이 달라붙는 것을 막기 위해 목뒤에 착용하는 것
  2)진신(泥鞋,니혜) : 비올 때 신는 기름 입힌 가죽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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