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상태바
고금소총
  • 한국수산경제신문
  • 승인 2017.03.15 12: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기생이 시의 기상을 평하다 (妓評氣像)
평안 감영에는 시를 잘 짓는 것으로 명성이 높은 두 기생이 있었는데, 한 여인은 금운(琴韻)이고 다른 여인은 죽엽(竹葉)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하루는 감사가 대동강가의 부벽루에서 잔치를 열고, 풍악으로 즐기다가 술이 얼큰해지니 두 기생을 불러 말했다.
"너희 둘이 모두 시를 잘 짓는다는 소문이 파다하니, 지금 앞에 보이는 경치를 가지고 즉흥시를 한 구절씩 읊어 보거라."
감사의 말에 따라 먼저 금운이 즉석에서 다음과 같이 읊었다.
山不渡江江上立 (산불도강강상립)
산은 강을 건너지 못해 강 언덕에 서 있고
水難穿石石頭回 (수난천석석두회)
강물은 돌을 뚫지 못해 바위를 돌아 흐르네.

기생 금운은 별로 생각하지도 않고, 앞에 펼쳐진 강물과 산을 보고 이렇게 읊는 것이었다. 이에 감사는 손뼉을 치면서 잘 지었다고 칭찬을 했다.
이를 보고 있던 죽엽이 빙긋이 웃으면서 말했다.
"시란 본래 그 사람의 심성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옵니까?
금운의 시에는 서방님을 붙잡아 두려는 나약한 여인의 심정만 표현되어 있어 좋다고 할 수가 없사옵니다."
"아니, 죽엽아. 그게 무슨 말이냐? 그렇다면 너는 어떻게 짓겠다는 말인지, 어디 한번 읊어 보려무나."
"예, 소녀 죽엽이 말씀 올리겠습니다. 지금 금운이 지은 시구가 기상(氣像)이 떨어지는 것은, 두 글자가 결정적으로 잘못되어 그런 것이옵니다.
그 시구에서 '아닐 불(不)'자와 '어려울 난(難)'자를 달리 고쳐 넣고 거기에 맞추어 조절하면, 뜻이 확 달라져 기상이 살아나는 것이옵니다.“
이 말을 들은 감사는 놀라면서, "그렇다면 죽엽이 네가 어디 한번 고쳐 넣어 보거라"하고 독촉을 하니, 죽엽은 이렇게 세 글자만 고쳐 읊는 것이었다.
山欲渡江江底立 (산욕도강강저립)
산은 강을 건너고자 하여 강 언저리에 서 있고
水將穿石石頭回 (수장천석석두회)
강물은 장차 돌을 뚫고자 하여 바위를 돌도다.
죽엽이 이렇게 고치니, 수동적이고 소극적으로 표현되었던 의미가 헤쳐 나가려고 하는 강하고 적극적인 의지의 표현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감사는 기생들의 작시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 기생 이별에 우는 감사 (別妓祖哭)
어느 도의 감사(監司 : 관찰사)가 임지에서 재임하는 동안 한 기생을 사랑하여 정이 깊이 들었다. 이 감사가 임기를 끝내고 돌아가게 되니, 상경하는 날 많은 기생들이 따라 나와 인사를 했다.
그 동안 감사와 깊이 정들었던 기생이 가마 앞에 나와 작별 인사를 올리니,감사는 이별이 슬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을 비오듯 쏟았다.
이 때 감사를 가까이 모시던 급창(及唱)이 가마 옆에 서 있다가 그 모습을 보고 비웃으면서 말했다.
"사또나리! 무슨 언짢으신 일로 그리 우시는지요?"
이에 감사는 뭐라고 둘러댈 말이 생각나지 않아 멍하니 눈을 들어 이리저리 둘러보다가,문득 길가의 한 무덤이 눈에 들어오자 그것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얘야, 저 무덤이 곧 내 먼 방계(傍系) 조상의 산소란다. 내 이곳을 그냥 지나치려니 슬픔이 북받쳐 자연 눈물이 나는구나."
"옛? 사또나리! 잘못 알고 계시는 말씀이옵니다. 저 무덤은 얼마 전에 사망한 소인의 동관(同官)이던 도방자(都房子)의 무덤이옵니다.
저 무덤을 쓸 때 소인이 여기 있었나이다."
이 말을 들은 감사는 손으로 눈물을 닦으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그 옆에서 듣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입을 가리고 웃었더라 한다.


 
 

 

- 인색한 관장 시험하기 (吏弄吝嗇)
옛날에 어떤 고을 관장으로 임명된 사람이 몹시 인색한 성품을 지니고 있었다.
부임길에 오르는 날, 새 관장을 모시고 내려갈 이방이 인사를 드리니, 관장은 감상(監嘗)1)을 불러서 이렇게 이르는 것이었다.
1)감상(監嘗 : 관장의 음식을 관장하는 관리.
"내 식성은 생선이나 육미 등 비린내 나는 음식은 일절 먹지 않으며 채소 같은 담백한 음식만 좋아하니, 잊지 말고 반드시 명심해야 하느니라.
만약에 어겨서는 벌을 면치 못하리라."
그리고 떠나기 직전에도 다시 여러 아전들과 관노들에게 다음과 같은 명령을 내렸다.
"내 부임길 도중 점사(店舍)의 식사에서도 생선이나 쇠고기 돼지고기 등을 올리지 말 것이며, 두부나 채소 등속을 이용한 반찬만 마련하도록 하라.
그리고 고을에 부임한 다음에도 늘 비린내 나는 고기가 아닌, 담백한 채소류만
반찬으로 마련해야 하느니라. 이 점 각별히 명심해야 할지니라."
아전들이 길게 대답을 하고 물러나와 출발 준비를 하면서 가만히 살피니, 관장은 성품이 인색하여 값비싼 고기를 먹지 않으려는 듯이 느껴졌다.
그래서 아전들이 내려가는 부임길 도중에 한번 시험해 보기로 작정했다.
드디어 출행 길에 올라 서울을 떠나 내려가는데, 날이 저물면 점사에 들러 밤을 지내곤 하면서도 며칠 동안 계속 5,6푼 밥상1)으로 대접을 했다.
1)5,6푼 밥상:정식 관장의 밥상에서 고기 종류를 제하고 10분의 5,6 정도로 줄여 차린 상.
그러다가 하루는 저녁 밥상에 슬그머니 양볶이2) 한 그릇과 생선구이 한 접시를 올렸다.2)양볶이:소의 위에 양념을 하여 기름에 볶은 요리. 
그랬더니 관장은 크게 놀라면서 감상을 불러 추궁했다.
"내 평소 어육 반찬을 싫어해 비린내를 맡으면 구역질이 나는고로 담백한 음식만 마련하라고 서울에서부터 일렀거늘, 어찌하여 분부를 따르지 않고 고기 반찬을 올렸느냐?"
"예, 사또나리! 그 동안 분부 받자와 연일 채소 반찬으로만 식사를 올렸사온데,
여러 날 행차에 사또나리 기력이 약화될까 걱정되옵고, 게다가 밥상에 올린 그 두 가지 반찬은 돈을 들이지 않고 얻은 것이기에 올렸사옵니다."
"뭐라고? 돈을 들이지 않고 어디서 얻었단 말이냐?"
"예, 아뢰옵니다. 양볶이는 이 고을 관아에서 이방에게 보내온 것이오며, 생선은 이 점사 앞 냇물에 물고기가 많아 조금 전 호송 관노들이 내려가 두 손으로 움켜잡은 것이오니 돈이라고는 전혀 들지 않은 것이옵니다."
그러자 관장은 웃으면서 말했다.
"음, 그렇다면 내 비록 즐기지 않는 것이나 너희들의 성의를 생각하여 어찌 물리치겠느냐? 먹도록 하겠노라."
이러면서 관장은 올려진 생선과 양볶이 그릇을 모두 비우니, 호송하는 관노들이
서로 보며 입을 가리고 웃더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