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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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소총
  • 한국수산경제신문
  • 승인 2017.02.23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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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낙비가 맺어준 연분 (豪雨結緣)
어느 여름날 가세가 기울어 서른이 넘도록 장가를 못 든 노총각과 청상과부가 각자 자기네들 밭에 나가 김을 매다가 갑자기 억수같이 퍼붓는 소낙비를 피하여 가까운 정자로 같이 뛰어들게 되었다.
그런데 노총각이 가만히 살펴보니 청상과부의 얇은 모시옷이 소낙비에 젖어 살에 착 달라붙어 속살이 아른아른 비쳐 보이는데 그 자태가 심히 요염하여 노총각의 애간장을 녹여 태우게 되었다.
참을 수 없는 욕정의 불길이 치밀자 노총각은,"에라, 나도 모르겠다"
하면서 청상과부를 끌어안고 엎드렸다.
깜짝 놀란 청상과부가,
"아, 이런 짓을 하고서 하늘을 어떻게 보려고 그래요 !"
하니 노총각이,
"그러니까 이렇게 나는 엎드려 땅을 보고, 아주머니는 하늘을 못 보게 내가 가려주지 않소."
그리하여 마침내 노총각과 청상과부간에 불이 붙고 말았다.  그 후 서로 나이가 엇비슷한  남녀들은 살림을 합쳐 자식을 낳고 해로하였는데 사람들은 이들을 소낙비가 맺어 준 연분이라 하였다.




- 임진왜란을 예언하다 (必有倭亂)
양주 어느 마을에 박 참판이 살았는데, 같은 마을에 양반도 아닌 상인으로 조씨 성을 가진 한 사람이 권농(勸農) 직을 맡고 있었다.
조 권농은 비록 양반은 아니었으나 사람됨이 성실하고 부지런했으며 누구에게나 공손하여, 마을 사람들이 모두 그와 친근하게 지냈다.
특히 박 참판은 조 권농을 존경하고 따라 그의 집에 자주 드나들며 집안의 제반사를 서로 의논했고, 음식이 생기면 나눠 먹을 만큼 정의가 두터웠다.
어느 날 밤이었다. 박 참판이 잠이 오지 않아 홀로 사랑방에 앉아 있으려니, 문득 밖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는 갑자기 문이 열리더니 조 권농이 들어와 앉아서는 박 참판의 이름을 부르며,
"그대는 왜 이렇게 혼자 앉아 있는 게요?"
하고 반말 비슷하게 묻는 것이었다.
그러자 박 참판은 저이가 평소 마루 아래 엎드리며 감히 바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공경하던 사람인데, 갑자기 밤에 찾아와서는 이름을 부르고 반말을 하여 매우 괴이하게 생각했으나, 좀더 지켜보기로 하고 꾹 참으며 대답했다.
"나는 잠이 오지 않아 앉아 있거늘, 권농은 무슨 일로 밤이 깊었는데 이렇게 찾아온 게요?"
"아, 뭐 밤도 길고 심심해서 이야기나 하려고 왔습니다."
이러면서 권농은 옆구리에 차고 온 술병과 삶은 닭을 내놓는 것이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밤이 제법 이슥해지도록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얼큰하게 취해 갔다.
"나와 참판은 양반과 상인이라는 신분의 차이는 있었으나 오랫동안 서로 친분을 유지해 왔는데,이제 작별을 하게 되니 자연히 슬픔에 가슴이 메이는구려."
"아니, 작별이라니? 권농은 이 마을에서 대대로 살아왔는데, 어찌 고향을 떠난단 말인가? 무슨 일로, 어디로 가려고?"
"나와 참판 사이에 감출 일이 뭐가 있겠는가?
앞으로 3년 후면 반드시 왜란이 있을 텐데, 8년 이내에는 평정하기 어려울 걸세.
그래서 내 떠나려고 하는 거라네."
이 말에 박 참판은 식은땀을 흘리면서 다가앉으며 물었다.
"그대가 왜란이 있을 것을 미리 알고 있고, 또 쉽게 평정하기 어렵다고 한다면, 왜 조정에 막을 방도를 알려주지 않는고?
나에게라도 어떻게 막을 방도를 알려 주게나?"
"참판! 우리 조선은 사람의 임용을 명분에 의해서 하기 때문에, 아무리 옛날 중국 한신(韓信)이나 장자방(張子房) 같은 재능을 지녔더라도 신분이 천하면 임용되지 못한다네."
"그렇다면 현재로는 왜란을 막을 도리가 없다는 말이로군."
"그렇다네, 다만 상책(上策)을 사용하면 3년 만에 평정할 수 있고, 중책(中策)을 쓰면 5년 안에 평정할 수가 있다네. 그리고 하책(下策)을 쓰면 8년이라야 평정할 수 있게 되네."
그러자 박 참판은 그의 손을 잡으며 좀더 자세한 내용을 일러 달라고 간청했다.
이에 권농은 말을 이었다.
"상책이란 것은 안동 고을에 아전으로 있는 아무개를 임용하는 일이고, 중책은 내가 나서는 일일세. 그리고 하책은 남쪽 지역에 있는 이순신을 임용하는 일이라네."
"그건 그렇다 치고, 왜란이 일어났을 때 나는 어디로 피란을 해야 안전할까?"
"음, 그래서 내 일러 주려고 온 것이라네. 어느 고을 어느 산에 들어가 움막을 짓고 있으면 화를 면할 수가 있는데, 참판의 아우가 마음이 흉악해 반드시 그 움막을 뺏으려 할 것이니 그게 문제로세. 한 가지 방법은 처음 움막을 지으면 참판 아우가 빼앗으려 할 테니 주어 버리고, 다시 큰 기와집을 한 채 지으면 아우는 또 그 기와집을 빼앗으려 할 걸세.
그 때 기와집을 아우에게 주고, 다시 그 움막에 들어가 살면 무사할 걸세."
이와 같은 이야기를 하는 동안 새벽이 되었다. 참판은 잔을 씻어 다시 권농에게 술을 권하고, 서로 손을 잡은 뒤 헤어졌다.
아침에 참판은 종을 시켜 조 권농 집에 가보라고 하자, 이미 떠나고 집이 비었더라고 아뢰었다. 다시 참판은 편지를 써서 종에게 주고는 안동 관아의 모 아전에게 전하고 답서를 받아 오라고 했더니,
종이 돌아와서는 어느 날 그 아전이 종적을 감추었다고 아뢰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전이 종적을 감추었다는 날을 계산해 보았다.
조 권농이 집을 떠난 날과 같은 날이었다.
이에 박 참판은 조 권농의 예언이 허언은 아닐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그가 일러 준 고을 그 산으로 갔다.
처음에 움막을 하나 지으니, 과연 아우가 내막을 알고는 그 집을 달라는 것이었다. 박 참판은 할 수 없이 그 집을 아우에게 주고 다시 기와집을 크게 지으니, 또 아우가 뺏으려 하기에 주어 버렸다.
그리고 움막으로 들어와 있으니, 얼마 후 도적이 산속의 큰 기와집을 보고 들어가 아우를 칼로 찔러 죽이고 재물을 빼앗아 달아났다.
세월이 흘러 3년이 지나니, 조 권농의 예언대로 왜란이 일어나 8년을 끌다가 평정되었다. 이런 일로 보면 마음이 착한 사람은 비록 환란을 당해도 면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는 이야기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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