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대관령 주막집 여인의 유혹 (上)
상태바
<고금소총>대관령 주막집 여인의 유혹 (上)
  • 한국수산경제신문
  • 승인 2016.11.03 07: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6월 초부터 피는 밤꽃 향기는 특이한 냄새를 풍긴다
옛날에는 남자들의 정액 냄새와 비슷한 이 냄새를 ‘양향(陽香)’이라 불렀다.
이 냄새에 취하여 부녀자들의 자세가 흔들릴까봐 밤꽃이 필 무렵이면 부녀자들은 외출을 삼갔고 과부는 몸가짐을 더욱 조신하게 처신했다.
‘혼인으로 부부의 연을 맺었지만 나라에서 필요로 하는 큰 인물이 될 때까지 부부관계를 잠시 접고 한양에 올라가서 공부를 하세요
저는 친정에서 그림 공부나 하며 서방님의 입신양명을 기다리겠습니다.‘
지금으로부터 380년 전, 아내의 청을 받아들여 한양으로 공부하러 간 선비가 있었다.
혈기왕성한 나이에 아내와 떨어져 공부에 전념하던 선비는 꽃같이 예쁜 아내가 보고 싶어 아내와의 10년 약속을 어기고 처가를 찾아가는 길에 강원도 평창 대화의 한 주막에서 하룻밤 묵게 되었다.
그 시절에는 강릉에서 서울을 오가는 선비들은 진부에서 하룻밤을 묵고 아흔아홉 구비 대관령을 걸어서 넘어야 했다.
한양에서 대화까지 걸어왔으니 노독이 쌓여 곤한 잠에 떨어질 즈음 주막집 울타리에 늘어선 대숲이 스산한 가을바람에 사각거리고 짝을 찾는 귀뚜라미 애달프게 울어 에는데 달빛 교교한 심야에 주안상을 받쳐 들고 장지문을 여는 여인이 있었다.
“게 누구냐?”
“아낙이옵니다”
달빛에 비치는 여인을 바라보니 주막집 여인이 틀림없다.
땅거미가 내리는 저녁 무렵 주막을 찾아들었을 때 수려한 인물에 단아한 자태가 이런 시골구석 주막에 있기는 아까운 인물이구나 하고 눈여겨봤던 바로 그 여인이었다.
“이 깊은 밤에 어인 일인고?”
“선비님의 인품이 고고하여 약주 한 잔 올리려고 하옵니다”
나직한 목소리로 다소곳이 머리를 조아리며 절을 올리는 자세가 범상치 않다.
여인의 자태에서 양반집 규수의 흔적이 묻어나고 있었지만 오른쪽으로 여민 말기의 품새로 보아 처녀는 아닌 것 같았다. 비록 치마로 하체를 감쌌지만 들이쉰 숨을 아래로 내려 음기(陰氣)를 모은 뒤 깊이 빨아들이는 훈련을 한 걸음걸이로 보아 여염집 아낙은 아닌 듯싶었다.
“허허허 자네 뜻이 정 그러하다면 술을 따르게” 수염을 쓰다듬으며 너털웃음을 웃고 있지만 선비의 얼굴은 호기심과 긴장이 교차되고 있었다.
다소곳이 절을 올린 아낙이 살포시 일어나 교방 탁자 넘어 구석에 자리를 지키고 있던 거문고를 가져왔다.
섬섬옥수 여인의 오른손이 술대를 쥐고 허공을 가르더니만 거문고가 팅∼ 통∼ 탱∼ 울어댄다.
고치에서 비단을 뽑아내듯 섬세하고 부드러운 음향이 가야금이라면 밤나무로 뒷받침대를 하고 오동나무로 울림통을 한 거문고는 음(陰)과 양(陽)이 교합할 때 들려오는 교성처럼 잦아들다 솟구치고 솟구치다 잦아드는 음색이 황홀하고 열락적이다.
여인이 쟁반에 옥구슬 굴러가는 목소리로 권주가와 함께 잔을 채운다.
부드러운 여인의 손에 들려 있던 호리병에서 흘러나온 송화주가 선비의 입을 통하여 몸속에 흐르자 짜르르∼ 술기운이 전해온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더니 이게 무슨 횡잰가?
이 호젓한 곳에서 달빛 은은한 심야에 술과 여자라 회가 동하지만 근본을 알지 못하는 여인은 함부로 범접하지 않는 것이 선비의 도리이니 경계할 수밖에 “그래, 무슨 사연이라도 있느냐?”
“선비님과 하룻밤 가연 맺기를 간절히 청하옵니다”
가연(佳緣) 요샛말로 하면 원나잇스텐드(one-night stand) 하자는 것이다.
남녀유별이 엄격했던 그 시절에 정숙해 보이는 여인네가 처음 보는 남정네에게 통정(通情)을 청하니 놀라 자빠질 일이었으나 촉촉이 젖은 여인의 검은 눈망울이 그 무엇을 간절히 갈구하고 있었다.
여인은 겨드랑이가 깊이 파인 연분홍 항라 저고리를 벗고 모란무늬가 은은한 치마끈을 풀어내리고 선비의 품속을 파고들었다.
아무리 선비의 체통이 군자의 뜻을 좇는다 해도 혈기 왕성한 사내인 이상 불끈 일어서는 욕망을 잠재우기는 어려웠다.
지게문 사이로 들어오는 달빛에 비친 여인의 속살이 눈부시다.
귀밑머리에서 흘러내린 어깨선이 상아를 깎아내린 듯 아름답다.
다 벗어 내리지 않은 치마 말기 속에 반쯤 드러난 젖무덤이 터질 듯 솟아 있다.
호리병을 두 손에 받쳐 들고 술을 따를 때에는 봉긋한 꼭지가 선비의 팔굽을 스쳤다.
바람이 분다.
향탁에선 연향(戀香)이 타오르고 문틈 사이로 흘러들어온 바람에 등촉등불이 살랑거린다. 흔들리는 불빛에 드러난 여인의 얼굴은 발그레 물들어 있고 숨소리는 거칠어졌다.
거친 숨소리가 점점 더 가빠온다.
촉촉이 젖어 있는 여인의 두 눈이 스르르 감기더니 별빛처럼 반짝거렸다.
분꽃씨 같은 여인의 검은 눈동자가 눈물에 떠 있는 조각배처럼 흰자위에 두둥실 떠 있다.
멍! 멍! 멍!
밤하늘에 흐르는 달그림자를 보고 놀랐는가?
동구 밖 물방앗간에 몰래 숨어 들어가는 아랫마을 돌쇠와 과부댁을 보고 컹컹대는가?
이때 개 짖는 소리가 적막을 깼다.
아궁이에서는 남은 솔가지가 마저 타느라 타닥거렸다.
여인이 나비 등잔불을 껐다.
밤하늘엔 별이 쏟아지고 다시 적막이 흘렀다.
여자를 품에 안아본 것이 언제였던가?
7년 전 한양으로 공부하러 떠나올 때 사랑채 문간을 부여잡고 흐르는 눈물을 옷고름으로 닦던 아내의 얼굴이 스쳐 지나간다.

<다음호에 계속>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